Gospel Letter. ‘ 코람데오(Coram Deo) ‘

Gospel Letter. ‘ 코람데오(Coram Deo) ‘

‘코람데오’는 ‘하나님 앞에서’란 뜻의 라틴어입니다. 제 모교의 표어이기도 했습니다. 몇몇 신실하신 교수님들께서 코람데오의 신앙을 가지지 않으면 결코 훌륭한 목회자가 될 수 없다고 수없이 강조하셨습니다. 아무리 큰 교회를 하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든 하나님 앞에서 인정 받지 못하면 그것은 진짜 성공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코람데오가 얼마나 어려운 신앙인지 말입니다. 말로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하지만 실제로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산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신학교 시절에는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진짜 많이 몸부림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 생각하니 아침에 일어나면 엎드려 기도부터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니 성경을 펼치고 읽습니다. 공부를 할 때도 정직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노력한 만큼 결과를 받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래서 교수님들도 전통적으로 시험 감독에 들어오지 않으셨습니다.(칠판에 코람데오를 적으시고 말이죠.)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분 나쁜 일이 생겨도 하나님께 왜 기분이 나쁜지 여쭈어야 했습니다. 무엇을 판단하고 선택할 때도 항상 기도를 하게 됩니다. 남 이야기를 함부로 할 수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도 하나님이 주신 말씀 앞에 다시 확인해야 했습니다. 이런 삶은 사람들과 함께 있든, 혼자 있든 언제나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전도사가 되고 목사가 되고 보니 하나님 앞에서가 너무나 어렵게 느껴집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기 시작하고, 어떤 결과를 내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괜찮아 라고 타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뜨겁게 예배드리던 마음가짐도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교역자는 대충 예배드려도 된다는 식입니다. 사역만 잘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감사한 마음, 기쁨이 넘치는 마음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저 멀리 가버리고 서로 자존심을 세우고, 서로 분탕질을 하기 바쁩니다. 영혼을 살려야겠다는 뜨거웠던 열심이 이제는 ‘왜 나만 열심히 해야 해?’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제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너는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구나, 너는 왜 변질되었니?, 내가 너를 알지 못한다’라고 하실 것 같았습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_야고보서3:13’

사탄은 우리에게 스스로 지혜가 있다 생각하게 만들고 총명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불신앙을 집어넣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불신앙입니다. 구원받을 때는 그렇게 고마워하고 감사하면서 무엇이든지 다 할 것처럼 기도했으면서 언제부터인가 하나님을 찾지도 않을 만큼 이상해졌습니다. 마치, 가난할 때 그렇게 도와줬더니 먹고살만하니 이제 당신 도움 필요 없다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타락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혹은 우리가 타락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교제 속에 있다면 우리는 늘 감사가 넘칠 것이고, 우리는 늘 하나님의 선한 뜻을 위해 노력하며 살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뜨겁고 열정적일 것이며, 우리의 인생은 밝은 빛으로 밝아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나라에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될 것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것이 꿈이자 비전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볼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구나 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_시편131:1-3’

 

_하나님께 인정받고 싶습니다, 오승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