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spel Letter. ‘둘째를 낳고 보니’

가스펠 편지 Gospel Letter

– 둘째를 낳고 보니.

환경이라는 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첫째를 온전히 도맡아서 챙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둘째와 함께 조리원에 가 있는 동안 첫째를 챙겨야 하고 그런 상황 속에서 둘째와 조리원도 신경 써야 합니다. 평소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노력으로도 잘 안 되는 상황이 닥치면 목사인 저도 제법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어제는 밀린 설교 준비와 글 쓰는 것, 사역 등을 첫째 일찍 재워놓고 해야지 했는데… 첫째의 ‘아빠 일어나’ 소리에 잠을 깨고 보니 아침입니다. 맙소사!

인간은 누구나 환경에 영향을 받습니다. 마음속 상처나, 낮은 자존감, 비교의식이나 여러 가지 마음속 환경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경제문제나 가정문제, 실제적인 주변 환경이나 주변 사람 등은 꽤나 우리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그것들 전부 요람이겠지요.

저는 신앙생활의 역사가 짧다 보니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고, 또 교회를 충실하게 섬겼음에도 불구하고 귀가 얇았던 것 같습니다. 누가 이런다더라, 저런다더라 그러면 줏대 없이 이리저리 갈대처럼 흔들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 중에 분명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는데 삶은 그렇지 않다거나, 교회를 잘 섬겨야지 고백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분들을 보면 대부분 환경이 가로막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매번 똑같은 환경입니다. 환경을 한번 극복하고 넘어가면 될 텐데 그걸 피하고 포기하고 낙심하고 숨어버리면, 다시 그 환경은 또 우리를 괴롭히게 되는 거죠.

죄인 된 인간은 하나님을 피해 살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런 습성들이 만든 것이 우리가 겪는 모든 내적, 외적 환경들입니다. 그리고 세상입니다. 그래서 세상과 가까워지면, 돈이나 명예, 쾌락이나 행복과 같은 세상이 주는 것들과 가까워지면 주님과 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_로마서6:6’

자아가 아직 죽지 않았다고 하시는 분들을 보면 자신의 혈기나 정욕, 음란함과 욕심, 시기 질투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에서 주님과 연합하여 죽은 것은 육신이 아니라 죄의 종노릇 하던 옛사람입니다. 그 말은 우리 안에 죄의 욕구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죄의 종노릇 하던 옛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혈기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혈기에 종노릇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정욕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정욕의 노예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으면서 자아를 죽이려는 것은 마음을 비우고, 집착을 버리는 도 닦는 종교생활 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요람을 찢는다는 말은 내 자아를 죽인다는 말입니다. 내 자아를 죽이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온전히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보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과 가정, 그리고 교회에 어떻게 주고 계시는지, 그리고 어떻게 영적인 싸움을 싸워 내 가정과 교회 그리고 후대들을 지켜야 할 것인지 그것들이 보이게 됩니다.

그것이 보이기 때문에 힘겨운 환경 속에서 믿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이유는 단지 내가 행복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실 구원 사역 때문입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길 기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스펠 교회는 지역 교회가 아닌 성도들의 모든 가정과 지역에 세워지는 말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노릇 하지 않기 위해 ‘결단’을 해야 합니다. 레위기 말씀처럼 예배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결단해야 합니다. 결단은 더 이상 죄의 종노릇 하지 않겠다는 고백입니다. 그 결단은 요람을 찢고 나오도록 힘을 줍니다.

_환경에 신앙이 지지 않길, 신앙이 환경에 승리하길, 오승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