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가스펠편지

Gospel Letter. ‘도망치십시요!’

By | 가스펠편지

가스펠 편지 Gospel Letter

– 도망치십시요!

당신의 진정한 행복을 빼앗아가는 것들이 무엇인가요?

저는 불신 가정에서 예수님을 믿고 정말 행복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예수님으로만 행복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살아가다 보니 돈도 필요하고, 명예도 필요하고, 권력도 필요하고, 인간관계도 필요하고, 먹고 마시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얻으려고 노력했고 그런 노력으로 동기 전도사들 교회 봉고차 타고 다닐때, 나는 소나타 타고 다녀서 우쭐했습니다. 동기 전도사들 힘들고 어려울 때, 비행기타고 해외 다니면서 강의하러 다닐때 되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돈이든, 권력이든, 인간관계든, 성공이든, 그러한 것들이 점차 제 마음에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정말 행복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전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에 취해 살았습니다. 돈에 취해 살고, 권력에 취해 살고, 성공에 취해 살고, 세상 것에 취해 살다보니 도무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행복의 근원이 예수님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제 속에 더 이상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구원을 위해 살지도 않았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도 온전히 들리지 않았습니다.

‘술 취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영적인 삶을 갉아먹을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힘쓰십시오._에베소서5:18’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들이 저의 진짜 행복을 빼앗아 가는 줄 생각도 못했습니다.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빼앗아가는 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로부터 도망치기로 했습니다. 술취하고 방탕한 것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더 큰 염려를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염려가 죄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살지 마십시오.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듣기도 거부하니, 알 수도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습니다. 그들은 부끄러워할 줄 몰라서, 악한 일을 일삼고 점점 더 방탕한 생활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관해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진정 그분의 말씀을 들었고, 또 배웠으므로 진리 되신 그분 안에 살고 있다고 확신합니다._에베소서4:17-21’

맞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마음에 예수님이 오셔서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의미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살라는 뜻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때 우리가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번영, 부, 성공에 집중하는 복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기 계발에만 집중하는 복음, 그리스도가 아니라 인간이 영광을 받는 교회, 성경이 없는 교회, 십자가 없는 신학, 죄로부터 회개가 없는 설교, 죄가 편안하게 느껴지는 예배, 정치 이야기로 가득찬 강단에서 도망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사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시어, 하나님 앞에 향기나는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_에베소서5:1-2’

정말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를 멸망하게 하는 것들로부터 도망쳐야 할 것입니다.

_무엇이 우리 영혼을 안전하게 해줄 수 있고, 구원할 수 있나요? 바로 예수님입니다. 오승주목사

Gospel Letter. ‘함께 할 때의 힘’

By | 가스펠편지

가스펠 편지 Gospel Letter

– 함께 할 때의 힘

우리 마음은 너무 쉽게 굳어지고 또 강팍해집니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마음이 언제 굳어지고 강팍해졌는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예수님이 내 삶에서 전혀 의식되지 않고, 주님 앞에서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서슴치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잠들지 않도록 서로 권면 하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_히브리서3:13’

이 어두운 세상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신앙생활을 혼자서 하기 힘드니 영적인 동반자가 반드시 있어야 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서로 권면하고 일으켜주고, 안아주고,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함께 가야 합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_마태복음18:20’

분명 주님은 우리에게 함께 모인 곳에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왜 그런 약속을 하셨을까요? 그 말은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깨달음에서 오는데, 그 사실을 누군가 일깨워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정말 힘이 듭니다. 의심이 생길때도 있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나면 주님이 아닌 우상이 더 쉽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공동체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하게 가르친 것은 성도 모두가 성경을 읽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서로 가르치고 양육받는 것이 교회 공동체가 할 일이라고 하였죠.

우리는 아쉽게도 코로나로 소그룹이 모일 수 없지만, 성경 읽기와 그 속에서 묵상한 내용들을 나누는 것으로 서로 권면하고 또 함께 하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에 엄청난 힘이 됩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한다는 것은 신앙의 가장 기본이요 양심입니다. ‘그냥 알아서 읽으면 되지 왜 함께 읽고 또 나누어야 해?’ 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실 수 있지만, 혼자 읽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서로 함께 하는 것에 하나님의 역사가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왜 담임목사인 저도 매일 성도님들과 함께 공동체 성경을 읽고 또 제가 속한 40대 소그룹에 ‘성경을 읽었습니다.’ 라고 올릴 까요?(물론, 저도 읽지 못했을 때는 못 올리고 있습니다.) 모든 교역자, 직분자, 장로, 권사, 안수집사와 같은 리더들은 더욱 모범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삶으로 가르치는 곳이 때문입니다. 스스로 교만하면 결코 신앙이 건강할 수도, 또 성숙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읽고 있는 성경이 겨우 3장 뿐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 3장을 매일 읽는 삶을 살기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그래서 서로 권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꾸준하게 살게 되면 그냥 읽는 3장이 아닌 어느날 그 말씀이 눈에 들어오고, 또 묵상이 되어질 것입니다. 주님이 내 삶 가운데 늘 살아 계시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동반자를 만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서로에게 좋은 믿음의 동반자가 되길 원합니다. 신앙의 경력이 서로 다를 수 있고, 또 각자의 연약함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할 수 있는 신앙,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신앙의 길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신앙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가 주어집니다. 부자든, 가난하든, 많이 배웠던, 그렇지 않든 누구나 다 신앙은 처음입니다. 신앙이 자라고 성숙하면 공동체에서 누구나 도움을 줄 수 있고 또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작은 것부터 시작하고 또 그런 과정 속에서 내 신앙이 자라 다른 지체들을 섬기는 믿음의 동반자가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_전도서4:12’

_오승주목사는 사랑하는 우리교회 성도님들에게 좋은 믿음의 동반자가 되고 싶습니다.

Gospel Letter. ‘하늘을 바라보고 삽시다!’

By | 가스펠편지

가스펠 편지 Gospel Letter

– 하늘을 바라보고 삽시다!

금요일 밤 예배 때마다 요한계시록으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요한 사도가 본 하늘에서의 예배가 계속 머릿 속을 떠나질 않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의 예배가 과연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예배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보좌로 부터 두루마리를 물려받은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는 경배와 찬양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예배를 보니 한없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예수님은 어린양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그저 ‘예수의 이름으로’ 으로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하여가 아닌 레위기에 나온 각을 뜨고 목을 따서 피를 다 흘려 제단앞에 다 태워 드린 그 ‘어린양’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있는 유일한 제사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십자가의 어린양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어린양 예수님으로 우리는 놀라운 죄사함을 받을 수 있고 새로운 변화를 겪을 수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 앞에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지고 가는 모습인데, 바로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즉, 우리의 기도를 예수님은 금대접에 담아 보좌 앞으로 가지고 가신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슬픔과 아픔과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어린 양 예수님을, 십자가지신 우리 예수님을 의지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신앙의 이유가 아니었고, 예수님이 신앙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도사때 만난 한 고등학생은 저에게 예수님에 대해 전해 듣고 너무 기뻐하였습니다. 자신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에 저를 만나기 위해 너무 슬픈 얼굴로 앉아 기다리는 것 아닌가요? 아빠가 그랬다는 거예요. 누가 너의 죄를 그냥 공짜로 사해주냐고, 예수님 믿는 것 다 사이비라고, 거짓말이라고, 공부나 열심히 하고 또 착하게 살아야지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한 것입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입니다. 누가 나 같은 것을 그냥 구원해 줄까? 그 생각에 기쁨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그날 제가 그 친구에게 성경을 전부 찾아 읽어주었습니다. 보라고 예수님이 어린 양 되어서 너의 죄를 사해주었다고!

우리는 종종 예수님이 아닌 우리의 행위에 사로 잡혀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 마음이 묶여 있고 또 땅의 화려한 우상들에게 마음이 빼앗겨서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이 어두워서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이지 않으니 곧바로 세상의 것들이 내 마음을 훔칩니다. 그것은 엄청난 유혹이라 하겠지만, 그 끝은 상처와 낙심을 줍니다.

생각해보십시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에게 어떤 행위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돈인가요? 잘 사는 것인가요? 물론, 필요하지만 정답은 아닙니다. 죄악 많은 이 땅에 속하여 이 땅의 것만 바라보고 살면 지옥에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에서 부어주시는 은혜를 받아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하늘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하늘을 잃어버리면 점차 영혼의 기쁨도 잃어버리게 되고, 예배하는 안식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신앙은 인생 중에 그렇게 가치 없는 취미나 종교가 되어버립니다. 외식이나 쇼핑, 데이트 보다 못한 예배가 되어버립니다.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고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어치 있는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엄청난 투자를 해서라도 얻어야 할 인생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일텐데 그것을 모르고 땅을 선택하여 살아가는 이 세대가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두렵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딸 시온의 성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를 쉬게 하지 말지어다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각 길 어귀에서 주려 기진한 네 어린 자녀들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_예레미야 애가 2:18-19’

_어린양 예수님을 경배하고 찬양합니다. 온마음다해, 오승주목사

Gospel Letter. ‘요한계시록이 쓰여진 이유, 그리고 우리의 믿음에 관하여’

By | 가스펠편지

가스펠 편지 Gospel Letter

-요한계시록이 쓰여진 이유, 그리고 우리의 믿음에 관하여

사도요한은 밧모섬에 있는 감옥에 갇혔다는 말은 당시 신앙의 어려움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제국은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게 만드는 정책으로 세계를 정복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극심한 박해와 그로 인한 환난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끔찍하게 순교를 당했을 뿐만 아니라 겨우 남아 있던 사도 요한도 감옥살이를 했고 결국, 순교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이 때 예수님께서 요한사도에게 보여주신 환상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하늘(천국)에 대한 환상입니다. 사도요한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실체를 정확하게 묘사할 방법이 없어서 구약 성경의 언어를 이용하여 대부분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나오는 단어가 구약에 쓰여진 보석이나 특정한 단어들, 그리고 숫자들입니다. 사실 보석이나 숫자 등은 많은 주석가들이 여러 해석들을 해놓았습니다. 충분히 고려할 만한 해석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도요한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중요한데 그것은 천국이 있고, 보좌가 있고 또 그 보좌의 영광이 너무 크고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그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요한은 걱정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은 전부 순교를 당했고, 교회는 로마제국으로 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아 곧 사라질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로마 황제의 권세를 하늘을 찌를 듯 했고, 성도들은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도요한에게 환상을 통해 천국과 장차 일어날 일을 보여주시면서 오히려 회개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장차 갈 천국은 로마 제국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죠. 보좌의 권세는 황제의 권세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겪고 있는 핍박과 고통은 머지 않아 전부 위로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보니 기쁨이 충만해지고, 거룩한 곳을 보고 나니 이 땅에서 믿음을 지켜 살았던 성도들에게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입에서 찬송이 나오고 함께 모여 예배함이 영광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 이 땅에서 잘살고 못살고의 기준이 바뀌고, 우리 인생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세상임금 곧 사단 마귀가 왕노릇하니 세상이 너무 두렵고 무섭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벽한 구원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우리가 장차 갈 본향 곧, 하늘 나라는 분명 존재합니다. 그곳에서는 슬픔도 눈물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로지 하나님만 경배하고 찬양하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어쩌면 신앙생활이라기 보다 믿음을 지키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믿음에 대한 보상이 바로 요한계시록에 보여주신 하늘 보좌의 영광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도요한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므로 감옥에 가는 일인가요? 로마 황제가 내려주는 직업, 물질, 너희가 예배만 버리고, 교회만 버리고, 예수를 주라고만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주겠다는 유혹을 거절하여 지하 묘지(카타곰)에 숨어지내는 것인가요? 기록에 보면 초기 기독교의 예배는 눈물이 없었던 적이 한 하루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럴 만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또 목숨을 걸고 드린 예배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예배는 오늘날 화려한 악기와 조명, 시스템, 프로그램, 건물이 아닌 정말 성령의 뜨거운 역사였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예배드리면서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구원의 은혜, 하늘 나라의 소망을 어떻게 하면 로마제국과 이방인에게 전할까? 그렇게 그들은 거룩한 공동체, 거룩한 삶을 추구하였으며, 모일 때마다 성경으로 교육받았고, 또 세상에 나가서는 청지기의 사명으로 최선을 다해 업을 감당했다고 합니다.

로마제국은 멸망하였고, 하늘 나라는 영원합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_요한계시록4:11’

_오늘날 믿음을 지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승주목사

Gospel Letter. ‘이사야서의 쓴소리’

By | 가스펠편지

가스펠 편지 Gospel Letter

– 이사야서의 쓴소리

이사야서를 설교하면서 마음이 되게 많이 불편합니다. 목사로서 축복하고 싶고, 잘될 것이라고 위로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사야의 메시지는 그런 말씀이 단 한군데도 없어 보입니다. 심지어 축복, 위로의 메시지라고 알고 있는 구절들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강력한 회개의 메시지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쓴소리들도 계속 듣다보니 이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왜 유다백성들이 포로가 되었는지, 왜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는지 그 이유들을 알고 보니 고개가 끄덕거려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우치기 위해서 말씀과 역사를 주셨습니다.

죄인 임을 깨닫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질문들을 하십니다. 성경은 죄인 임을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고, 성령께서 오신 이유이며, 유일하게 하시는 일이라고 까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다니는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믿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그렇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의 삶을 통해 마음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고 느껴집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교회에 등록하거나, 과거에 영접 기도 했다고 천국갈 확신이 있다고 말하거나, 습관적으로 가끔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그런 성도들보다 훨씬 더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의 실상을 드러내셔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내 자녀를 키우고 길렀으나, 그들이 나를 배반했다. 소도 제 주인을 알고, 나귀도 제 주인의 여물통을 알지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_이사야1:2-3(쉬운성경)’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인은 망하고, 여호와를 떠난 사람은 죽을 것이다_이사야1:28(쉬운성경)’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회복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된 삶이죠. 그것이 신앙의 기초입니다.

하나님이 주인된 삶은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분의 종으로 살기 위해 나를 바꾸거나, 그분의 말씀의 뜻을 헤아려 순종하거나, 총명과 지혜를 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사는 것들입니다.

‘내가 짙은 구름과 같은 너희 죄악을 지워 버렸고, 안개와 같은 너희 죄를 사라지게 하였다. 내가 너희를 구했으니 내게로 돌아오너라_이사야44:22(쉬운성경)’

사람들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삶이 왜 자유의 삶인지, 왜 축복의 삶인지, 왜 기쁨이며 영광인지 이해를 잘 못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을 많이 오해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유일하신 창조주, 구원자, 참 신인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쓴소리)을 듣는 것이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죄인 됨을 다시 자각하고, 죄로 무너진 기초를 다시 세우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회복할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의 쓴소리 처럼 들리는 이사야서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기쁜 일이 아니겠습니까. 또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또 섬기는 일에 게을리하겠습니까.

-무엇보다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길, 부디 하나님을 경외하는 축복된 삶이 되길_오승주목사

#우리가가는길 #보이지않지만 #믿음으로가는길 #영광스러운 #신앙의길 #예배자로살아요

Gospel Letter. ‘예배를 회복합시다’ 라는 말의 의미는

By | 가스펠편지

가스펠 편지 Gospel Letter

– ‘예배를 회복합시다’ 라는 말의 의미는.

예배를 회복하자는 말은 주일예배, 금요예배와 같은 공예배를 말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되려면 우리 일상에서의 예배가 되어야만 합니다. 또 반대로 주일예배, 금요예배와 같은 공예배가 되어야 일상에서의 예배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운동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떤 운동을 하기 시작하면 어느 수준에 도달하려고 매우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매일 훈련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좋아하지 않는 운동은 어느 순간 훈련에 게으르게 되고, 또 기피하기 까지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좋아하는 운동이 생기면 힘든 훈련 과정을 즐기는 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예배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배는 여러 스포츠와 다른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하신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의 목적 즉,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구원의 증표이기도 하고, 우리가 걸어갈 신앙의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이기도 합니다. 그런 예배가 좋다면 그건 정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떤 분들은 구원도 좋고, 천국도 좋은데 예배는 싫다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교회가면 사람들과 교제하고 사역도 열심히 하고 예배는 잘 적응하기 힘들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래서 교회에 예배만 없으면 정말 좋겠다는 분들도 간혹 계십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친밀하게 되기 위한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하나님, 내가 사모하는 하나님 나라와 친밀하기 위한 훈련이 바로 예배인 셈입니다. 훈련이 싫어서 여러가지 핑계로 멀리할 수도 있지만, 멀어진 만큼 하나님도 멀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아무리 운동을 말로 좋아한다고 해도 훈련을 좋아하지 않고 게을리하는 것은 정말 좋아하는 운동과 멀어지는 것 처럼 말입니다.

예배를 두고 어떤 분들은 마음(중심)만 중요하면 되지 꼭 행함이 중요하냐고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틀린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행함이 중요하지 마음(중심) 그거 쓸모 있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것도 틀린 것입니다. 마음이 있으면 행함이 있습니다. 즉, 마음과 행함은 떨어질 수 없는 하나입니다. 정말 사랑하면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고, 사모하는 마음은 사모하는 행동이 정상입니다.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는데 그것을 표현하는 것을 외식이라고 말합니다. 외식은 상대방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상처를 주게 마련입니다.

우리 교회가 ‘예배를 회복합시다’ 라고 하는 말에 의미는,
먼저, 주일 예배나 금요예배와 같은 공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공예배를 통해 임재하시고 또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우리 삶에서 예수님을 가까이함으로 변화되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삶이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으면 예배는 외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그 영광의 하나님을 전하도록 증인이 되어, 성실하고 정직하고 무엇보다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영광의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삶은 반드시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이 되는 것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믿고 또 따르며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배의 시작입니다. 그 일에 마음이 중요하냐, 몸이 중요하냐의 질문은 매우 어리석은 질문이라 생각합니다.

예배가 기쁜 가요? 날 사랑하시는 주님을 사랑하시나요? 그런 우리 삶이 소중한가요? 그럼 제대로 입니다.

예배는 우리 모든 삶에서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은혜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고 은혜를 받는 삶이라야 예배할 수 있으며, 그 예배가 곧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_예배를 위해 고민하고 기도하고 또 공부하며, 오승주목사

Gospel Letter. ‘말씀사경회를 앞두고’

By | 가스펠편지

가스펠편지 Gospel Letter

– 말씀사경회를 앞두고

사경회라는 단어는 성경을 본질적으로 이해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신학이나 교리를 함께 나누는 시간이기 때문에 공부하듯 들어야 하는 내용입니다. 대부분 우리는 부흥회, 집회라고 해서 어떤 목적성 메시지나, 축복과 위로의 말씀을 선포하는 경우가 많은데 굳이 요즘 잘 쓰지도 않는 사경회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집회를 할까요?

먼저, 누구보다 목회자인 저를 위함입니다. 몇해전에 사경회를 준비하는데 다른 일정들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말씀을 준비하지 못해 고민하다가 일방적으로 취소한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일년에 한번하는 큰 집회를 며칠전에 취소한다는 것은 엄청난 손해가 있는 큰일입니다. 당시에 당회도, 성도님들도, 교역자들도 모두 당황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됩니다. 하나님앞에서 스스로를 속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의 게으름을 성도앞에서 진실하게 회개하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설교자는 날마다 더 성숙해야 합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또 묵상을 통해 매일 노력하고 있지만, 사경회를 통해 제 스스로 한편의 논문을 쓰듯 말씀을 준비하는 시간은 제 스스로 큰 도전이고 큰 성장의 시간입니다. 원석과 같은 말씀을 깊이 연구하는 시간을 스스로 주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성도님들을 위함입니다. 매주일마다 강해설교를 듣고 매일 공동체와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신앙생활을 잘 하고 계시지만, 그 짧은 설교와 삶의 묵상이 환경이나 상황들로 인해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매년 사경회를 통해 말씀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짐으로 그 깊이가 깊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때만큼은 어떤 목적을 위한 응답을 받기 위한 집회가 아니라 말씀 자체에서 주는 기쁨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게 성도님들도 신앙이 깊어짐을 경험함으로 반석처럼 견고하여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회를 위함입니다. 교회는 모이고 흩어지는 공동체입니다. 제 아무리 세상이 언택트시대라고 외치고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 결코 경험할 수 없습니다. 사랑, 믿음, 소망, 가족, 예배 그리고 거룩입니다. 심지어 이야기 나누고, 먹고, 운동하고, 함께 울고 웃는 모든 일상까지, 인간은 직접 보고 느끼고 체험하고 경험하면서 성장하고 성숙하고 또 깨우치며 사는 존재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여서 예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예수님은 어떤 마음이신지, 예수님은 어떤 길로 가고 계시는지 늘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흩어져서 사는 교회의 삶이 표류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사경회 만큼은 온라인보다 함께 모인 현장에서 말씀을 듣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모일 수 없는 이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온라인 사경회로 모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말씀사경회는 하나님께서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그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쩌면 함께 모이지 못한 이런 상황에서 그 말씀들이 더 우리에게 커다란 의미가 되지 않을까 생각되어집니다.

말씀사경회에 깊은 은혜가 있도록 함께 기도하길 소망합니다. 무엇보다 모든 성도님들이 이번 사경회를 두고 금식하면서 마음이나 환경을 준비할 수 있길 바랍니다. 이번 사경회를 통해 또 한걸음 깊어지는 시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_주께서 기뻐하실 말씀사경회를 기대하며, 오승주목사

#2021 #가스펠교회 #말씀사경회 #일어나라빛을발하라 #그의미를배우며 #삶을고치며 #그렇게살아가는삶을두고 #구속의은혜 #성경해석 #성경공부 #온라인이라 #아쉽지만 #더깊어지질#기도제목

• 성도들의 사경회준비 : 매일 한끼 금식하며 기도하기, 사경회 본문 말씀인 로마서 읽기, 사경회 참석 할 수 있는 환경과 마음가짐 만들기

Gospel Letter. ‘사랑은 율법이 필요합니다’

By | 가스펠편지

가스펠 편지 Gospel Letter

-사랑은 율법이 필요합니다.

저는 고등학교때 정말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그때 고린도전서 1장 말씀이 그렇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자,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하시나니 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사실, 그때는 예배를 드리면 설교가 마음에 와닿은 정도가 아니라 마음에 기쁨으로 믿어지고 이해가 되어졌습니다. 이해가 안되면 일주일 내내 너무 궁금하고 알고 싶어서 성령님 도와달라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또 읽어서 성경이 닳도록 읽었습니다. 금요예배에 가서는 제발 말씀이 깨달아지도록, 깨달음이 올때까지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_시편119:97-105’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는 말씀의 깨달음을 성경을 사랑하라는 것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멀어지면 아무리 겉으로 신앙생활 잘한다, 사역 잘한다 해도 어느 순간 교만이 찾아오거나 낙심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즉, 육체가 영혼과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명철을 주시는데 원수보다 지혜롭고, 스승보다 나으며, 노인보다 나으며, 그 말씀으로 인해 내 발, 내 인생은 악한 길로 가지 않게 됩니다. 당연히 거짓 행위를 미워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저는 목사가 되고 어느 순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변질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교만때문이었습니다. 오승주목사가 교만하다? 제 주변에서는 저를 그렇게 보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늘 겸손하게 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의 교만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았던 저만 알고 있는 저의 삶이고 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았던 것은 어느 순간 괜찮아진 육신때문입니다. 육신의 정욕이 부족한 자, 천한 자, 멸시 받는 자 즉, 죄인의 삶에서 벗어나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폐하시려고 했던 스스로 있는 것들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폐하려고 죄임 됨을 깨닫게 하셨는데 말입니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한없이 연약한 죄인임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죄인임을 깨닫는 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 죄인 됨을 깨닫는 자입니다. 저 같은 목사도 늘 실수하고 또 부족함 투성입니다. 그래서 늘 주님을 의지해야만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성경말씀)이 필요합니다_존 스토트’

사랑한다고 하면서 서로간에 지켜야 할 규칙이 없다면 그건 말장난이 됩니다. 마음만 사랑한다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부부사이든, 부모자녀사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한다면 율법이 필요합니다. 또 사랑하기 때문에 율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께 헌신하고 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거룩한 삶, 성도의 삶은 전혀 어렵지 않게 느껴집니다. 주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계명을 공부하게 될 것이고,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우리의 발을 조심하게 될 것입니다. 조심한다는 것은 말씀을 떠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_고린도전서1:25’

_하나님의 것으로 충만하고 싶습니다, 오승주목사

Gospel Letter. ‘믿음에 대한 착각’

By | 가스펠편지

가스펠편지 Gospel Letter

-믿음에 대한 착각.

우리는 가끔 착각을 합니다. 인간이 무엇인가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래서 조금 이루고, 조금 가지면 힘을 주고, 압박하려 합니다. 어느 날 호흡이 멈추게 되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봅니다.

뭐든지 소유하려 하기에 문제가 생깁니다. 자식도 소유하려 하니 문제고, 돈이나 명예를 소유하려 하니 문제입니다. 무엇이든지 마치 소유하면 내 것인 것처럼, 행복한 것처럼 그렇게 세상은 속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앙도 소유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깨달으면 믿음을 소유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만 역사가 일어나면 자기가 최고가 됩니다. 깨달음마저도 자기 것이라 생각하여 그렇습니다. 그러니 교만해집니다. 제가 신학교에 갔을 때, 그리고 목사가 되었을 때 가장 위험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현장에서 열매도 많았고(많게 보였던 것이지요), 사역도 열심히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경배에서 멀어집니다. 목사인지라 훈련도 많이 받고 예배(형식적인)는 수도 없이 드렸지만, 온전한 경배에서 멀어집니다. 예수님이 주인된 삶이 아니었습니다. 내 자존심, 내 인생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러니 쉽게 분노하고, 쉽게 무너졌습니다. 정말 아이러니하지요. 답을 가진 줄 알았습니다. 이것이 맞아, 저것이 맞아 쉽게 결론을 내리고 쉽게 판단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시대에 가장 믿음이 좋다는 욥을 테스트합니다. 신앙이 좋아 늘 주님을 예배하던 욥입니다. 억울할 만 합니다. 그렇게 망할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립니다. 그런 욥이 모든 테스트를 통과하고 드디어 이런 고백합니다.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_욥기42:2-6’

교회를 개척하면서 몇 가지 결단한 것이 있습니다. 절대 성도들을 약하게 키우지 않겠다. 그것은 어떤 제자도나 훈련의 방식문제가 아닙니다. 경배를 목말라하는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쉽게 구원이 이루어진다 한들 그들이 세상의 방식을 이겨내지 못하고 하나, 둘 쓰러지고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차피 설득으로 그들을 돌이킬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문화사역입니까? 전문사역? 어떤 형식들일까요? 다 맞는 말이지만 교회의 본질은 경배입니다. 그들이 주님을 경배할 믿음을 없으면 말짱 꽝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경배의 자리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수많은 믿음의 테스트가 우리 앞에 놓여져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을 때 경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경배를 위해 사는 인생이 될 때 우리 인생중에 주님이 빛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도 빛나겠지요. 음부의 권세가 절대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_마태복음16:18’

_주님만을 경배하는 믿음의 교회를 간구하며, 오승주목사

Gospel Letter. ‘마음을 돌이키라’

By | 가스펠편지

가스펠편지 Gospel Letter

– 마음을 돌이키라.

저는 ‘회개’라는 단어를 자주 씁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회개를 많이 오해하고 있습니다.

사실, 울부짖는 것 자체는 회개가 아닙니다. 그냥 고통의 표현일 뿐입니다. 사람은 괴로우면 신음합니다.

고통스러우면 부르짖습니다.

회개는 정말로 내 마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냥 울고불고 떼쓰고 기도하는 것이 회개가 아니지요. 사실 그렇게 하면 마음은 시원한지 모르나 늘 원위치가 되는 기복이 심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꾸 하나님을 바꾸려합니다. 내 뜻을 그대로 두고 내 고집, 내 욕망을 그대로 두고 예수님을 바꾸려합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니고 종교겠지요.

진정한 회개는 주일에 성경책 들고 다닌다고 돌이킨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경건하고 저것은 불경하다고 구분해서 행동한다고 완전히 돌이킨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돌이킴이란 내적 태도의 변화가 아닐까요? 다시 말해 마음이 돌아서는 것입니다. 여전히 내 것, 내 뜻,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면 아직 돌이킨 것이 아니겠지요.

사람들은 하나님 없어도 잘 살 수 있을 거라 착각합니다. 세상 방식으로 살아야 배부르게 살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상 신을 섬깁니다. 가나안의 이스라엘백성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그것에는 허무함과 공허함만 남게 됩니다. 결국 세상 신의 종노릇하게 되지요.

‘예수 믿기 전에 붙들고 있던 것들은 예수 믿고 나서 다 잃었지만, 예수님이 새로 제 손에 쥐어주신 것들이 너무 귀해 잃어버린 것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참 행복할 텐데 우리는 어쩌면 반대로만 가려고 하는지요.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그렇지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아야 마음을 돌이킬 수 있습니다.

직원이 사장의 뜻도 모르고 열심히 일하면 지혜롭지 못한 것이지요. 군인이 지도자의 작전도 모른 채 혼자 열심히 싸운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래서 진정한 회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을 제대로 알아야 하지요. 그것이 되어야 신앙생활이 흔들림이 없는 것입니다. 왜 시험이 들지요? 왜 환경과 상황 그리고 사람에게 흔들리지요?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감정적으로만 신앙생활해서 그렇습니다.

단 한 번의 기도로 문제가 해결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건강한 신앙인이 되길, 거룩한 백성이 되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디로부터 돌아서야 합니까? 무엇으로부터 돌아서야 합니까? 언제 돌아서야 합니까?

말씀으로 돌아가 세상의 것으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마음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지금이 그 때입니다.

‘오라 우리라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_호세아6:1’

_주님께 날마다 돌아가 주님의 뜻대로 살길 원하는, 오승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