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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 Letter. ‘신앙생활의 4가지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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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펠 편지 Gospel Letter

– 신앙생활의 4가지 기준

이 시대는 ‘자신 혹은 자아’에 빠져있는 시대입니다. ‘자신’으로 치환된 단어들이 이리도 쏟아진 적이 없고 우리 자신에 함몰되어 버린 채 객관적 진리와 접촉할 시간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엄청난 진리와 접촉할 능력과 기회를 가지고도 말입니다.

우리는 결국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사실입니다. 그 때에는 인생에서 수확한 모든 메달들은 떨어져버리고 모든 업적들도 의미가 없어질 것입니다. 그때 인생에서 남겨지게 될 유일한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어떻게 여기실 것인가’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느냐 입니다.

첫째, 영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때부터 영원에 관심이 생겨났습니다. 내세가 있다는 사실도 설교와 성경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땅은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통해 우리는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달에 처음으로 착륙한 우주비행사들이 지구를 봤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인간의 눈으로 우주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제일 먼저 창세기1:1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인간은 결코 이 우주를 조성할 수 가 없습니다. 이 우주에 적합한 유일한 단어가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머니에서 포도주와 빵 한 조각을 꺼내 성찬식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우리가 영원과 접촉하여 사는 길입니다.

둘째, 도덕입니다. 세상은 도덕성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선하다 악하다, 좋다 나쁘다, 우파 좌파 이런 식으로 서로 구분하여 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도덕성은 위와 아래 뿐입니다. 예수님은 악한 자를 선하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깨달을 때 은혜가 시작됩니다.

셋째, 책임입니다. 세상은 책임을 말합니다. 남편이 잘못했잖아, 아내가 잘못했잖아, 아들이 잘못했잖아, 딸이 잘못했잖아, 부모가 잘못했잖아, 그가 잘못했잖아, 그녀가 잘못했잖아, 그들이 잘못했잖아.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문제의 핵심은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성경은 거울을 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살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내 자신을 보길 원합니다. 성경은 우리보고 하나님 역할을 하지 말라 고 하십니다. 우리가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종종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도 살아야 하고 저들과 악수를 하기도 해야 합니다. 저는 네팔 사람과 살 수 없고 그들과 악수하는 것도 마음에 내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과부와 고아와 병든 자와 버려진 자들에게 가셨습니다. 십자가 사랑은 그런 자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그런 자였습니다. 영적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잊어버리고 교만하게 살고 있을 뿐입니다. 십자가 사랑이 마음에서 멀어져 가면 우리는 하나님에게서도 멀어져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바로 사랑입니다. 가깝게는 믿지 않는 가족을 사랑해야 하며, 멀리는 이름도 모르는 네팔의 한 영혼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마음을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예수님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_요한복음15:10-11’

_사랑하는 가스펠 가족들에게, 오승주목사

Gospel Letter. ‘예수님 안, 예수님 옷, 예수님과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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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안, 예수님 옷, 예수님과 동행.

죄인인 ‘나’라는 자아는 세상을 만나면서 옷을 입습니다. 그러나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른 옷을 입으려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렇게 내 옷장에는 여러 가지 옷들이 즐비합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더 만족하려고 더 많은 옷들을 구하고 더 두껍게 옷을 입습니다. 이제 옷 밖으로 나오질 못합니다. 나도 모르게 그 옷들이 내가 되어버렸습니다. 옷을 벗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모릅니다.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나도 모르게 옷이 내가 되어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나’는 옷 속에 숨어버립니다. 아무도 모르겠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겠지. 그러나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 옷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옷입니다. 그런데 원래 입고 있던 옷이 너무 많아서 또 너무 두꺼워 벗기가 쉽지 않습니다. 겉보기에 초라하게 보이는 예수님 옷을 입으려고 그 동안 열심히 모았던 이 아름다운 옷들을 벗으라고? 그렇게 포기하고 또 뒤돌아섭니다.

그리스도의 옷을 입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세상의 옷들은 우리의 겉모습을 감추어줄 수 있으나 우리의 죄를 감추어줄 수 없습니다. 세상의 옷들은 쾌락을 줄 수 있으나 따뜻함을 줄 수 없습니다. 세상의 옷을 벗고 예수님 옷을 입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_갈라디아서3:27’

그렇게 옷을 벗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구원 받고 싶은 마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세상의 옷을 벗으니 ‘나’가 보입니다. 마주하기 싫지만 그 순간에 예수님이 옷이 되어 안아주십니다. 너무 따뜻합니다. 포근합니다. 주님의 위로, 주님의 은혜가 내 삶을 감싸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_로마서6:4~5 ’

주님의 옷을 입으려면 주님과 함께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함께 죽어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도대체 죽는 것이 무엇인가요? 세상의 옷을 벗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옷을 입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쉴 수 있는 곳은 예수님 안입니다. 일이 없어서 쉬는 것이 아닙니다. 일이 많아서 힘든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면 주님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 마음이 쉼을 얻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_마태복음11:28-30’

_예수님 옷, 예수님 안, 예수님과 동행하는 축복, 오승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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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 Letter.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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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아마 비 그리스도인도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다 들어봤을 것이다.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한 질문이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였다. 아마도 이 질문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이 또 있을까? 누가 우승했어? 내가 보는 드라마 시청률은 몇 프로야? 이런 사소한 질문이나 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인데.

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율법이 뭐라고 하느냐? 율법교사는 정확한 답을 알고 있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예수님은 곧바로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면 살리라.’

그때 율법교사는 나처럼 생각했겠지. 내가 하나님을 누구보다 사랑하는데, 그래서 율법을 이렇게 잘 지키고 있는데,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맞아. 나는 헌금도 잘하고 기부도 잘해. 그때 율법교사는 다시 물어본다.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내 이웃은 누구입니까? 이 말은 자신의 이웃이 누군지 알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야 자기의 의로움, 자기의 능력, 자기의 믿음을 보여줄 수 있고, 또 자랑할 수 있을 테니까.

예수님은 그때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꺼내신다. 유대인이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마리아인. 그들과 상종도 안할뿐더러 그 사람들이 사는 지역은 절대 발을 들여놓지 않을 정도로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다.

강도를 만나 옷을 빼앗기고 맞아 거의 죽게 되었는데 제사장도 그를 보고 피하고, 그와 같이 간 레위인도 피하고 그런데 사마리아인이 그를 불쌍히 여겨 상처를 고쳐주고 잠도 재워주고 돈을 주어 돌보아주었는데, 율법교사 자네 생각은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는가?

율법교사는 차마 입에 저주스러운 사마리아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어서 자비를 베푼 자라라고 얼버무리고 이야기는 끝난다.

율법교사라면 지금 오승주목사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온 교회 다닌 분들일 텐데, 난 누구의 이웃이 될 수 있을까? 강도만나고 거의 죽게 된 사람은 누구인가? 가난한 사람들인가? 사회적 소외계층인가?

어렵고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영생을 얻으려면 이 두 가지는 확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죽기보다 더 사랑해야 하고,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통해 알게 되었고, 믿음의 선배들의 삶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왜 그들은 그토록 하나님을 사랑했는지, 왜 그들은 그토록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는지 말이다.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오랜만에 왔다. 이 나라에 와서 십자가 사랑을 전해주고 희생한 선교사님들과 그의 가족들의 무덤이 있는 곳. 그들은 모두 의사였고, 법조인이었으며, 촉망받는 젊은이들이었는데 어쩌다가 조선 땅에 와서 그 모진 고통을 받고 이곳에 묻혔을까? 그리고 그들의 기록들은 왜 한결 같이 하나님을 사랑했노라고, 이 땅의 영혼들을 사랑했노라고 기록되었을까.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_누가복음10:27-28’

_사람에게 가장 좋은 이웃은 예수님을 알려주는 이웃,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하는 이웃, 오승주목사

#다시시작하는 #성령의역사 #울림 #복음전파 #영혼구원 #가스펠교회

 

Gospel Letter ‘넘어지면 일어나고 또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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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넘어지면 일어나고 또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고등학교에 다닐 때, 어린 제 삶이 너무 자주 무너져서 마음이 되게 속상한 적이 있었습니다. 주일에 설교를 들으면 알겠는데 막상 제 삶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니 허탈하기도 하고 낙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역시 난 안 되는 가 보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교회 누나에게 고백했더니 ‘승주야 일기를 한번 써보면 어떨까?’ 일기를 쓰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꾸기에 너무 좋다는 누나의 말에 당장 일기장을 한권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주일 설교를 듣고 느낀 점, 기도제목 같은 것을 적기 시작했고, 삶에서 실수하는 것들, 크고 작은 죄,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들도 다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고 느끼는 것들, 찬양가사, 결단 등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일기를 매일 쓴 건 아니었지만 가끔 써 왔고 목사가 된 이후로는 매일 쓰다시피 합니다.

저는 매일 성경을 읽는데, 오늘은 아모스를 읽었습니다.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로 시작하는 8장을 읽는데 정신이 번쩍 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거짓으로 지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책망하시는 장면인데 겉으로는 안식일을 지키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은 안식일에 관심이 없고 돈 버는 것, 남을 속여서 성공하는 것, 그런 것에 관심이 있었고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행위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제 일기장에는 아모스 8장을 읽고 이렇게 기록해놓았습니다.

‘경건, 경건의 모양으로 신앙을 시작하면 결국 경건의 모양으로 무너지겠구나. 경건의 능력 곧 하나님과의 관계가 되면 자연스럽게 경건의 모양도 생기는 법인데 우리는 계속 경건의 모양만 가지고 살고 있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는 것이 너무 중요하고 그것은 나와 하나님만 알고 있는 것. 주님 오늘도 너무나 사랑해요.’

신앙은 넘어짐과 일어섬의 반복입니다. 처음에는 그 간극이 너무 넓어서 힘들겠지만,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느끼게 되고 점차 간극이 줄어들게 됩니다. 간극이 줄어들게 되는 결정적 이유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장치가 내 삶에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경건의 모양이겠지요. 넘어지고 일어서고 또 넘어지고 또 일어서고, 그렇게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신앙생활이 진짜 힘 있는 신앙생활입니다.

바리새인처럼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껍데기 신앙생활은 나중에 스스로 무너지게 만듭니다. 나 중심의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하나님 중심 곧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묵상일기는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장치이자 나팔 소리입니다. 여러분의 삶 한켠에도 다시 일어서는 ‘회복’이라는 장치를 마련해보세요.

_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안내하며, 오승주목사

#가스펠편지 #묵상일기 #말씀묵상 #넘어지면일어서는 #신앙의힘이있는 #성도가됩시다👍

Gospel Letter.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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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천사들이 양각나팔을 불면 그리스도로 옷 입은 새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심판을 받습니다. 그래서 나팔을 불기 전까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산위에 등불처럼 삶으로 천국복음을 전파하라고, 추수할 일꾼이 되어 추수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마태복음5장)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그늘이 많고, 왜 이렇게 고난이 많을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새롭게 하시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이 땅에서 행복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도 그것 때문에 다니고 예수님도 그것 때문에 믿습니다. 이 땅에서 행복하려고 한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분명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삶은 내 자아로 사는 삶이 절대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살겠다고 한다면 나팔 불 때 이름이 불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이름이 불러졌다는 것은 내 마음대로 살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다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천국입성의 조건입니다. 성령이 임한 사람은 이것이 분별되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여기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 이런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 말은 이 땅은 천국이 아니라 심판받을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땅에 소망을 두고 행복이라는 장막을 짓고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행복 끝, 불행 시작과 같은 느낌을 받아야 정상입니다. 깨지고 깨져서 내가 죽고 예수님이 내 안에 사는 것, 그것을 깨닫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알게 해주시려고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알면 불행한 삶 속에서 기쁨을 맛보고, 어째 세상의 소망이 없이 사는 것 같은데 천국 소망으로 감사가 넘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저는 가스펠 교회에 오시는 성도님들이 정말 천국을 가시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천국을 누구나 아무렇게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천국복음을 최선을 다해 전하려고 합니다. 육신의 자아가 깨지고, 깨지고 또 깨져서 성령으로 충만할 때까지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초대교회 제자들처럼 살 때까지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요즘 누가 그런 삶을 사느냐고요? 성도는 기쁨으로 그 삶을 견딜 수 있고, 고난과 역경을 감당할 기도로 승리하게 됩니다. 결국, 나팔 불 때 성도만 남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한 청년이 상담을 해왔습니다. ‘목사님 저는 교회 다니는데 왜 항상 이 모양일까요?’ 제가 그 청년에게 바로 말했습니다. 너는 신앙생활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것 같아. 자기 할 거 다하면서 예배를 그렇게 대충 드리고 구원받는다고? 진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딴 짓할 틈도 없이 교회 다녀. 그것이 성령충만이야. 그리고 제자는 너처럼 그렇게 살지 않아. 죽을 만큼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는 거야. 제자는 다른 거 할 시간이 없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_마태복음5:20’

_가스펠 성도님들 제발 천국에 입성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오승주목사

#신앙은사색이아니라 #순종입니다 #믿음은 #수준이아니라 #예수님과동행하는것입니다 #교회는 #주일에가는것이아니라 #주님께서내삶에세우시는것입니다 #교회를세워갑니다 #천국복음을가르치는삶으로 #산위에등불과같은삶으로 #마태복음5장 #가스펠교회

Gospel Letter. ‘깊고 단단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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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고 단단한 인생.

인생을 살다 보면 수많은 고비들이 찾아옵니다. 한 고비, 한 고비를 넘기는 것이 인생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그 고비를 그냥 넘기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지나갑니다. 그래서 부활의 인생은 세월이 지나 제법 깊고 단단합니다.

신앙은 깊고 단단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자녀들이 그 신앙의 인생을 보며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깊고 단단한 인생 곧, 신앙은 수많은 시련과 아픔을 주의 달콤한 음성과 눈물의 기도 그리고 한결같은 믿음으로 견디어 결국 정금 같이 주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포기를 모르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중도에 포기한다면 그건 신앙이 아니라 신념 혹은 성격입니다.

신앙은 반드시 승리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린 그 섭리를 종종 이해하지 못하나 믿고 따르는 법입니다. 그리고 순간적인 재치나 잔머리 이런 것은 신앙을 방해할 뿐입니다. 그런 것들은 신앙의 우직함을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신앙이 깊어지고 단단해진다는 말은 우직함의 열매를 맺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우리는 제자가 됩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말은 제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제자라는 표현이 269번이나 사용되었지만, 반면에 그리스도인(크리스천)이라는 표현은 신약 전체에 고작 세 번밖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는 주님을 따르는 자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말은 주님과 동행한다는 말입니다. ‘옛날 옛적에 슈퍼 영웅이신 예수님이 내 죄 문제를 해결해주셨기 때문에 난 이제 천국에 갈 것이 확실하고 그러니 이제 마음대로 살아야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여정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보여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교회(그리스도인)가 더 많아지고, 더 화려해지고, 더 대단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과 우리 자녀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신앙은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기 때문에 한고비, 한고비를 믿음으로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행한 흔적이 우리 신앙을 깊고 단단하게 만듭니다. 우리 자녀들이 훗날 방황을 끝내고 다시 돌아올 때, ‘아 하나님이 살아계시구나!’‘아 하나님이 함께 하셨구나!’ 그런 인생이어야 하며, 그런 교회여야 합니다.

그러니 제자가 됩시다. 주님을 따르고 동행하는 신앙을 포기하지 맙시다. 그 길의 끝에 부활과 부흥이 있음을 소망하며 하루하루 복음으로 견고하십시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_로마서16:25-27’

_결코 포기 하지 않을 은혜를 구하며, 오승주목사

 

Gospel Letter. ‘청년세대를 위한 교회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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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세대를 위한 교회가 됩시다.

이 도시를 살아가는 청년들을 향한 마음이 무겁고 뜨겁습니다. 당장 우리 교회 청년들만 해도 치열하게 살아가느라 신앙에 있어서 참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것은 시대 혹은 정치나 국가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한 어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세상이라고 말하는 성경 속 표현의 주인공이 바로 이처럼 큰 대도시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울, 이 큰 도시에 왜 우리 교회를 세우게 하셨을까요? 많은 분들이 서울을 떠나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바울과 시대마다 수많은 성령 충만한 제자들은 반대로 로마를 향했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도시의 청년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지 않으면 이 나라와 가정, 그리고 교회마저도 소망이 없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주셨던 이전 세대에 주셨던 축복마저도 사라질지 모릅니다. 청년들이 깨어나면 그 다음세대는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청년들의 영적 게으름은 그 다음 세대에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라 현실은 너무 암담합니다. 한 종교단체에서 발표한 통계 자료에 보면 우리나라 중, 고등학교에서 교회에 출석하는 비율이 4-5% 정도라고 합니다. 에이 설마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우리 교회만 봐도 현실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혹시, 우리 주변에 신앙인이 많은 것 같아서 더 이상 복음을 전파하지 않고 있나요? 그런데 실상은 대부분 어릴 적 교회를 다녔지만 청년이 되어서는 교회를 떠나 불신자로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말은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을 뿐 더러, 인격적으로 주님과의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현장에서 목회를 하다보면 청년들에게 다른 것을 주려고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당장 성경을 가르치고, 뜨겁게 예배하고, 또 제자 훈련을 받는 것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엉뚱한 사역들을 하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당장은 그것이 너무 좋다고 많은 무리가 모이지만, 복음을 전파할 신실한 제자는 점차 줄어들게 됩니다. 결국 모인 무리들마저 세상을 좇아 떠납니다. 이런 악순환이 생겨서 수많은 목회자들이 그릇된 청년사역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강력하고, 성령의 충만함이 얼마나 놀랍고,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달콤한지 그리고 자신들의 인생으로 교회를 세우고, 자신들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 세워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축복인지 알려주려고 합니다.

이것은 목사의 다짐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교회 전체가, 전 중직자와 성도가 함께, 무엇보다 신실한 청년들이 함께 책임감을 가지고 뛰어야 할 것입니다. 어른들의 신앙모범이 청년들에게 가장 좋은 귀감이 될 것이고, 교회의 올바른 사역 방향은 청년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목회자의 지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동안 주셨던 복음의 모든 것과 달란트, 위치, 그리고 아주 작은 배움들까지 다 동원해서 청년들이 가슴 뛰게 하는 교회를 세울 것입니다. 가스펠 교회에 수많은 젊은 영혼들이 오게 할 것입니다.

청년들을 전도하십시다. 그들이 행여 듣기 싫어할지라도 복음을 전합시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칩시다. 새벽이슬 같은 신실한 청년세대가 일어나도록 온 힘을 다하여 기도합시다. 장로님, 권사님, 성도님 우리가 남은 인생 그렇게 삽시다. 가스펠 교회 청년들이여, 더 이상 영적인 게으름에 사로잡혀 허송세월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모입시다. 그리고 훈련 받읍시다. 인생을 살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런 제자가 되지 않고서 주님 앞에 선다면 얼마나 후회가 될까요? 우리 교회가 청년들이 몰려오는 교회가 되도록 우리 인생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합시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_시편110:1-7’

_청년사역을 위한 교회가 되길, 오승주목사

#가스펠교회 #새벽이슬같은청년들이나오도록 #권능의날에 #주의백성들이거룩한옷을입고 #헌신합니다 #부디🙏

Gospel Letter. ‘은혜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By | 가스펠편지

가스펠 편지 Gospel Letter

-은혜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은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받은 은혜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복음의 말씀을 듣고 회심한 저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예배시간은 항상 눈물의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창피할 만큼 많이 울었습니다. 기쁨이 넘쳤기 때문입니다. 죄인인 제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 당시 저의 형편은 그럴만한 조건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거 얼마 못 가’ 그러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예배 시간뿐만 아니라 혼자 있는 시간에도, 학교에서 생활하는 모든 시간에서도 은혜가 넘쳤습니다. 은혜를 받다 보니 놀랍게도 제 마음과 생각 그리고 삶까지 변화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_요한계시록21:6-7’

일주일 내내 예배시간만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말씀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또 반대로 예배시간에는 우리 가정에 은혜가 흘러가는 꿈을 꾸며 행복했습니다. 또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해줄 생각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런 제가 신학교에 입학하고 심각한 문제가 왔습니다. 바로 은혜가 소멸된 것입니다. 처음엔 몰랐습니다. 제가 똑똑하다고 생각했고, 사역을 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에 사로잡혀서 은혜를 놓친 것입니다. 문제가 와도 단지 환경문제인 줄 알았습니다. 가난 문제인 줄 알았습니다. 너무 힘이 들었지만 이유를 몰랐습니다. 어느 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데 ‘너 왜 힘들어해? 돈이 없어서야? 미래가 막막해서야? 가정의 문제 때문이야?’ 하나님께서 물어보시는데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는 내가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_히브리서10:38-39’

그때 이후로 은혜가 제 인생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바라시는 것이 은혜였기 때문입니다. 왜 예배시간에 앞자리에 성도들과 함께 앉아서 예배를 드리냐? 기준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왜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느냐? 은혜로 하루를 살기 위해서입니다. 실수를 해도 왜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있냐? 수많은 사역을 하고 또 문제를 풀어가는 기준 역시 은혜입니다. 제 인생의 모든 기준이 은혜이기 때문에 때로는 답답하게 보일 수 있고, 실패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_히브리서12:15-16’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결과도 그것에 따라 달라집니다. 요즘 교회 안에는 종교적으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성령을 통해 은혜를 받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매우 적습니다. 그것이 바로 역사의 차이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속입니다. 세상이 좋다, 세상이 전부다, 세상을 따라가자. 엄청나게 논리적이고, 멋진 말처럼 보입니다. 반대로 말씀에 순종하여 은혜를 좇아 사는 자들은 바보 같아 보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_히브리서12:28-29’

아멘 맞습니다. 우리 인생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은혜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 있을 수 없습니다.

_오늘도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간구하는 믿음의 삶을 살길, 오승주목사

Gospel Letter. ‘고난주간의 은혜’

By | 가스펠편지

가스펠 편지 Gospel Letter

– 고난주간의 은혜

돌아오는 주일은 고난주일입니다. 그리고 한 주간의 고난주간을 우리는 지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 고난주간에 특별새벽집회를 합니다. 그리고 가급적 이 땅을 위해 하루 한 끼 정도 금식하며 기도하도록 권면합니다.

사람들은 고난주간이 뭐가 중요하냐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미 다 끝내셨는데 왜 이런 것을 지켜야 하는지 의문을 가집니다. 저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냥 잘 평소처럼 믿으면 되지 귀찮게 꼭 새벽집회를 해야 하냐고, 금식을 해야 하냐고, 굳이 십자가를 묵상해야 하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하게 저의 인생만 봐도 늘 죄의 유혹이 제 주변에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몸으로 혹은 마음으로 죄와 가까워지려고 하는 습성도 매우 강했습니다. 물론 주의 복음을 전하며 살고자 했지만 실상은 복음을 이용하여 오히려 내 마음대로 내 인생을 살았던 때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늘 세상의 좋은 것만 구하고 또 간절히 바랍니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주님을 원망하고 또 쉽게 떠나버립니다.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우리 인생의 고난은 끝났지만 여전히 세상 고난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고난주간의 절기는 하나님의 특별한 위로하심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골고다 언덕에서 당하신 십자가 고통은 우리 신앙생활을 하는 내내 우리 가슴에서 나오는 감사의 제목이어야 하고 찬송의 이유여야 합니다. 그 십자가를 바라보고 묵상할 때마다 우리에게 베푸신 놀라운 사랑과 용서를 다시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찌 고난주간을 그냥 지나갈 수 있을까요. 죄악 된 이 땅

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현실을 우리는 새벽마다 깨어 하나님께 간구해야 하며 더불어 이 땅을 살릴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늘로부터 오는 새 힘을 얻어야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자신이 다시 십자가를 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겨우 5일이지만, 주님 앞에 서길 결단하여 새벽마다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삶의 처소에서 기도할 수 있는 마음, 영적인 분위기, 그리고 자세가 갖추어지는 기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_시편25:5-7’

_고난주일, 고난주간에 주실 은혜를 묵상하며, 오승주목사

#고난주일 #고난주간 #새벽집회 #온라인 #우리가서있는곳에서 #십자가의주님을바라봅니다 #그리고회개하며 #죄사함의은혜 #구원의은혜를 #구합니다 #진정으로감사하며찬송하며

Gospel Letter. ‘주님과 친밀하시나요?’

By | 가스펠편지

가스펠 편지 Gospel Letter

– 주님과 친밀하시나요?

코로나 19로 인해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벌써 주일학교는 한 달이 훌쩍 넘었습니다. 영상 예배 자체는 아이들 수준에서 보면 너무 지루하거나 너무 평면적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합니다. 아이들은 교회공동체라는 친밀한 환경에서 자라 성경과 신앙을 배우고 체득이 됩니다. 어른들처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있으면 이런 환경을 이해하고 영상으로 예배드리는 것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텐데 아이들은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아는 집사님은 가정에서 영상으로 예배드리면서 찬양할 때는 손을 들고 찬양하고 설교 시간에도 입으로 아멘이라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는 아이들을 안거나 손을 얹어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설명을 합니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이란다. 우리가 무엇으로 드릴 수 있겠니? 하나님께는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단다. 아빠가 손을 들고 찬양하는 것은 내 마음의 진심을 드러나 보이는 것으로 올려 드리는 것이란다.’

영상으로 처음 예배드릴 때는 처음 경험하는 여러 가지 감정으로 간절함이 더하겠지만 이런 시간이 반복되면 이 또한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 환경이나 상태보다 예배자의 마음과 태도가 문제 되지 않을까요.

사실,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의 신앙과 사역에 있어서 많은 것들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저는 엄청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강제적으로 넉넉한 시간을 가지면서 저의 영적인 생활을 점검하게 되었는데, 제가 실제로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이 너무 어색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역이 많을 때는 주님 바라보는 것이 잘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넉넉한 시간이 되니 제가 주님을 바라보는 것을 피하려고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성경을 읽는 것도, 기도를 하는 것도 시간이 많으니까 더 많이 읽고 기도도 더 깊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그동안 바쁨 속에 감추어져 있었고, 물질이나 인간관계, 어떤 상황 속에 숨겨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 마음이 그동안 예배의 형식이나 공동체 환경에 감추어져서 실제로는 주님과 친밀한 관계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저는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면 좋겠습니다. 이런 시간을 주셔서 다시 주님과 친밀하게 되려고 노력하는 요즘이 참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시 공동체예배가 회복되었을 때 우리 자녀들과 함께 더 뜨거운 예배가 되길 소망합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_요한일서4:8’

_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오승주목사

#주님을더욱사랑합니다 #정성을다해예배드리는것이 #그사랑의표현입니다 #공동체예배가다시회복되길간절히바랍니다 #고통당하는전세계를위해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