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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 Letter.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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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저는 3주에 한 번씩 미용실에 갑니다. 사실, 제 생각에 너무 자주 간다 싶은데 그럼에도 어쩔 수없이 갑니다. 주일에 설교하는 것만 아니면 맨날 모자 쓰고 다니니까 더 아깝기도 합니다. 친구들이 맨날 모자 쓰면서 또 미용실 가냐고 하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특별한 사역이 없으면 모자 쓰고, 반바지 입고, 슬리퍼 신고 편하게 다닙니다. 정말 세상 편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편하고 편리한 것만 찾으면 먹고살기는 힘들 것이 분명합니다.

돈을 받고 일을 하려면 돈을 주시는 분이 원하는 복장으로 출근하고 원하는 일을 해야만 합니다. 그것에 대해 불평이 없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영적인 것이라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편하고 편리한 것을 은혜라고 착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는 평안합니다.

그러나 힘써 여호와를 알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힘써 예배하지 않고 성경을 보지 않으면 영적인 축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갈 것입니다.

예배나 우리 삶에서의 신앙을 하나님은 분명하게 셈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편리함 속에서 올바른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구별된 자들의 삶이고 또 그것이 우리의 예배가 아닌가요?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_이사야2:3’

_신앙의 자세를 갖추길 원하는, 오승주목사

#구분 #구별 #편리함속에서도 #우리가해야할것들을놓치지않는다면 #그편리함은계속될것이지만 #만일놓친다면 #그편리함은곧사라질것입니다 #그것이이스라엘의역사 #이사야의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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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 Letter.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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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에 보면 하박국선지자가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사실 질문보다는 의문이었습니다.

‘하나님! 왜 하나님께서 불의한 사람들에게 주는 고통을 의인들도 똑같이 당해야 하나요?’

하나님께서 공의로 죄에 대해 벌하시는데 의인도 그 속에서 똑같이 고통당하는 것에 대한 하박국선지자의 질문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참 놀랍습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복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신앙생활을 남들보다 잘한다고 해서 세상에서 당하는 고통을 피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 인생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주는 유혹 똑같이 받아야 하고, 가난, 질병, 이별, 슬픔, 아픔, 고통, 늙음 그리고 죽음 까지 우리라도 틀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속에서, 그 안에서 똑같이 고통을 당하지만 그들과 다른 단 한 가지 이유는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험난한 삶 속에서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면 우리는 이 땅에 소수가 되어, 남은 자가 되어, 구별되고 거룩한 자가 되어,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거대한 세상에서 아무런 티도 안 나고 세상을 변화시킬 별 힘도 없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로마서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 믿음으로 사는 작은 자의 삶들을 사용하셔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자와 함께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곧 이사야서에서 말하는 남은 자이고, 믿음으로 사는 것은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사는 임마누엘의 기쁨이 넘치는 삶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_하박국3:17-19’

_믿음으로 사는 것의 행복함을 알길, 오승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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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 Letter. ‘유다 왕 웃시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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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다 왕 웃시야 이야기

북 이스라엘에 비해 남 유다는 매우 열악했습니다. 지정학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약했습니다. 12개 지파 중에 겨우 2지파만으로 구성된 남 유다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런 남 유다가 웃시야 왕이 세워지면서 부흥기를 맞이합니다. 웃시야는 건축학적으로 뛰어난 인물입니다. 특히, 석회암으로 구성된 땅이라 비가와도 다 스며들어 농사짓기가 어려웠는데 웃시야는 수로를 만들어 비가 오지 않더라도 물을 공급하였습니다. 또한 군사적으로도 뛰어난 전략가였습니다. 그래서 조공을 바치던 나라들이 오히려 조공을 바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도우사 블레셋 사람들과 구르바알에 거주하는 아라비아 사람들과 마온 사람들을 치게 하신지라. 암몬 사람들이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치매 웃시야가 매우 강성하여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더라_역대하 26:7-8’

그로 인해 웃시야 때 나라는 부강해지고 백성들은 매우 평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웃시야의 승리와 번영의 이유는 그의 신앙이 오직 여호와였기 때문이라고 성경에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휘하의 군대가 삼십만 칠천오백 명이라 건장하고 싸움에 능하여 왕을 도와 적을 치는 자이며 웃시야가 그의 온 군대를 위하여 방패와 창과 투구와 갑옷과 활과 물매 돌을 준비하고 (중략) 그의 이름이 멀리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었더라_역대하 26:13-15’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_역대하 26:5’

이런 웃시야가 흔히 말하는 나병(문둥병)에 걸려 비참하게 노년을 보내고 전염병이란 이유로 왕의 묘소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_역대하 26:16’

하나님은 철저하게 왕의 권한과 제사장의 권한을 분리해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웃시야는 사울 왕처럼 자신의 왕권에만 만족하지 못하고  교만하여 제사장 고유 권한까지 탐을 내었습니다. 웃시야는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비참하게.

이사야 1장은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_이사야1:18’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교만(자만)은 늘 우리에게 은혜를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주홍같이 붉은 죄를 눈과 같이 희게 해주셨는데 그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웃시야 왕처럼 업적이 많을수록 구원의 은혜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하나님을 놓치면 다 놓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설교를 통해 ‘그 은혜’가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_이사야 설교를 시작함에 앞서서, 오승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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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 Letter. ‘1%만 방향을 틀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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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만 방향을 틀어도.

1%의 방향만 틀어도 인생은 달라집니다. 겨우 1%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1%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큰 각도를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1%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부산에 있는 신학교에 갔는데, 가자마자 큰 낙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제가 정말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와서 내신 성적으로 기적과 같이 신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수업 내용을 잘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 온 친구들은 대부분 영어도 잘하고, 악기도 잘 다루고, 또 배경도 대단해 보였습니다. 친구들이 부모님이나 목사님, 교회 중직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또 도움을 받는 모습을 보면 너무 부럽기도 했습니다. 더 암울한 것은 저희 집에 너무 어려웠습니다. 어머니는 은행(?)도 가보신 적이 없어서 제가 필요한 돈을 보내는 것도 정기적이지 않았습니다. 또 집의 사정을 뻔히 알았던 저는 돈을 보내달라고 말도 잘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믿지 않는 가정의 소식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괴롭힌다는 소식, 누나들의 어려움들, 가족들의 이런저런 소식들 좋지 않은 소식들을 들었던 날이면 학교 운동장에 앉아 ‘하나님을 원망’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선배들의 도움으로 인도로 단기선교(비전트립)를 가게 되었습니다. 인도 북부(우상숭배가 제일 심하고 또 세계적으로 빈곤한 지역) 지역을 선교사님을 따라다니게 되었는데 그 모습은 20살의 신학생에게는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밤마다 인도의 영혼들을 위해 함께 기도할 때마다 저는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때 함께 갔던 한 선배와 버스 안에서 참 많은 대화를 하면서 신학교에 와서 힘들었던 저의 모든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선배가 저에게 해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선배는 저에게 ‘승주야 성경을 읽어라, 그리고 함께 매일 1시간씩 기도하자’ 이유는 저의 믿음이 자라도록 직적접인 조언을 해준 것입니다. 너의 환경, 너의 상황보다 크신 하나님, 완전하신 주님을 체험하도록 성경을 읽고 또 기도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때 선배가 한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1%만 너의 삶의 방향을 틀어보자! 하나님을 향하여 1%만 방향을 틀어봐! 세월이 지나면 넌 하나님과 정말 가까워져 있을 거야!

저는 인도에서 돌아와 매일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며칠은 잘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얼마나 힘들 던지 특히, 과제를 써야 하거나 시험 기간이 되면 성경을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매일 밤마다 교회에 들려서 한 시간씩 기도하는 것은 더 어려웠습니다. 그때마다 함께 성경 읽고 기도하던 선배와 친구들 덕분에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신학교 시절 시작한 성경 읽기는 지금도 계속하고 있으며, 기도생활 역시 그때의 습관으로 계속하고 있습니다. 삶이 변화되었다, 환경이 좋아졌다, 상황이 나아졌다와 상관없이 저는 ‘완전하신 나의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요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국가대표의 훈련은 일반인들이 따라 할 수 없을 정도의 힘든 훈련이지만 그들은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고 매일 훈련합니다. 국가대표의 영광, 가슴에 부착된 태극기의 영광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지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아니 하나님 나라의 대표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훈련 받고 연단 받아 그 나라의 영광에 동참하길 원하십니다. 가만있으면 그 영광은 결코 내게 오지 않습니다. 방향을 수정합시다. 1%면 충분합니다. 완전하신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매일 성경을 열고, 예배를 사모하며, 믿음의 길로 갑시다. 내 삶이 너무 연약하여 낙심할 것들 투성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주님을 바라봅시다. 1%만 방향을 틀어서!

_완전하신 나의 주님을 바라봅니다, 오승주목사

#1999년군생활 #일기장 #그때의기도제목 #하나님께로더가까이

Gospel Letter. ‘혼란스러운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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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스러운 때에.

이렇게 혼란스러운 때가 있었을까요? 우리 부모님 세대는 전쟁과 이 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에서의 혼란스러움을 겪었을 텐데 지금은 세대는 처음 겪는 혼란스러움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이 시대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말세의 때와 딱 어울리는 그런 세대입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이 많고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도 맞지만, 성도들을 미혹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것들은 재난의 시작이며 이때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환난이 있을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미움도 받는다고 합니다. 그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고 서로 잡아주기도 하지만 서로 미워한다고 합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합니다.

목회자로서 많이 혼란스러운 때입니다. 가스펠 성도님들과 함께 신앙의 길을 가야 하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사실 교회를 개척하고 어려움 속에서 함께 동참(?)하여 신앙생활하고 계시는 여러분은 저에게 그 누구보다 소중하고 귀합니다. 사연도 많고, 또 여러 가지 아픔 속에서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고 계심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개척하기 전에 저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분별도 못하는 목사였습니다. 그러다가 수많은 사건 속에서 성경을 마주하고서야 제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하는 일이 사명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전도를 많이 하고 세계복음화를 해야 하는 것도 맞는 말이지만 그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 사랑이고 또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욕심이나 이익을 위해 전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결국 사랑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사랑과 거리가 멀어지면 은혜에서도 거리가 멀어집니다.

신앙생활은 부끄러운 죄가 가득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자신이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단정하고 교양 있어 보이는 한 신사가 집회를 하고 있는 무디를 찾아왔습니다. ‘솔직하게 내가 왜 그렇게 큰 죄인인지 모르겠습니다.’ 무디는 다른 말 하지 않고 마태복음22:37을 찾아 읽게 했습니다. 그 성경을 읽은 신사는 무디의 손을 잡고 눈물로 회개하였습니다. 가장 큰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서 자기가 죄인인지 인정 못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는 죄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 삶에 은혜 없이 우리는 어떻게 이 혼란스러운 시대를 분별하며 살 수 있을까요? 은혜 없이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요? 은혜를 사모하면 이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주님이 주신 사명 곧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이랍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올바른 길 가게 하는 기준이요 방향이며 또 천국을 향하는 길입니다.

결코, 천국을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좋은 환경이나 혹은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때나 모두 우리에게 천국을 선물해 주는 삶은 아닙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것들이 우리를 배신하여 영적인 감옥에 가두어버립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먹는 것이 배반하고, 좋은 환경들도 배신합니다. 행복하게 해주는 모든 것들이 다 배반해서 우리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하지 못하게 하면 나중에 분명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땅이 열매를 맺지 않을 재앙을 만나면, 자녀들이 교회를 떠나고 예배를 떠나면, 당장 죽을 때가 되어 천국과 지옥이 진짜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사명이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성경을 읽어 그 지혜를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마태복음 22:37-38]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_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오승주목사

#가스펠교회 #말씀묵상 #은혜나눔

Gospel Letter. ‘하나님이 주신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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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펠 편지 Gospel Letter

– 하나님이 주신 사명.

예수님을 믿는다면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곳이 ‘사명’입니다. 그 사명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서 흔들림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명은 우리에게 엄청난 힘을 주기도 하고, 위로를 주기도 합니다. 사명으로 공동체가 튼튼할 수도 있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어줍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사명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사명이라 하면 전도하는 것, 선교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수많은 방향들과 전략들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보고 느끼는 것에 마음을 담기 때문에 누군가에 의해 보여 지는 것을 나의 사명이라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를 만나느냐,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 어떤 공동체에 속하였느냐는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조나단 에드워드 같은 지도자를 만나 영적 각성 운동을 뜨겁게 감당했다면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존 웨슬리 같은 전도자를 만나 성령의 역사를 뜨겁게 따라 살았다면 얼마나 그 삶이 귀할까요, 초대교회나 안디옥 교회의 성도로 살아 복음의 확산을 맛보았다면 그 삶은 너무 값질 것입니다. 만일 이 시대에도 그런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면 우리는 그 속으로 깊게 들어가야만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교회는 회개와 회복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다양한 전도운동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지만, 기본과 기초가 튼튼하지 않아 그 성장을 담아내지 못해 무너지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많이 아파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하여 인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도 너무 많이 무너졌습니다. 그로 인해 거룩한 공동체 신앙도 이미 무너지고 철저하게 개인주의가 교회 안에도 가득한 때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아니라 성장 중심 혹은 성도의 축복과 성공에 초점이 맞춰진 사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상인지도 모른 채 말입니다.

신앙은 반드시 열매로 말한다고 성경은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는 정직하고 정확하며 확실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에 대해 분명한 결과가 우리의 삶이라고 확신합니다. 행여 사람들에게는 겉으로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마음을 오픈하고 살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목사들이 모르는 시대입니다. 은밀한 죄가 있어도 감추어버리면 그만입니다. 반대로 목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은 자존심, 상처, 핑계, 하나님 앞에서라는 좋은 말로만 형성된 철저하게 개인주의 신앙으로 실제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마귀는 온갖 쓰레기 같은 생각을 우리 마음에 항상 넣어주려고 합니다. 미움, 열등감, 염려와 두려움, 불길한 생각, 음란과 욕심 같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개인주의입니다. 성경과 교회와 상관없이 내가 알아서 사는 삶 말입니다. 마귀가 심어준 생각과 감정을 자기의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솔직한 것이 아닙니다. 속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을 믿음의 사람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온 생각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마음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마음을 열고 사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살면 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지 실제로 점검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계명(사명)을 두가지로 정리해주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온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사랑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 열방을 살리기도 해야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잃어버리면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교회를 성장시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사명은 너무 간단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고, 또 우리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사는 방법입니다.

_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오승주목사

Gospel Letter. ‘세상에서 제일 힘든 곳,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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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제일 힘든 곳, 가정

아이들에게 복음을 각인시키라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복음을 각인시킨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자세를 갖추게 하고, 복음을 각인시키고, 아이들이 그것에 집중하게 하여 요셉처럼 큰 인물이 되라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렇게 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세상에서 제일 힘든 곳이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복음을 가르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목사인 저의 가정만 해도 그것을 하기 위해 정말 많이 애쓰고 또 노력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것만 신경 쓰고 살 수 있나요?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일도 해야 하죠. 일을 하다 보면 가정에 신경을 제대로 쓸 수가 없기도 합니다. 당장 맞벌이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면 가정은 정말 힘든 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가정이 행복하지 않다면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겠지요.

그러고 보니 교회 안에 가정들이 참 많이 어렵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신앙이 깨어진 가정, 함께 하면서도 아무런 영적 교감이 없는 가정,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개인주의로 마음의 대화를 할 수 없는 가정, 온갖 상처로 무장해서 툭 건들기만 하면 터지는 시한 폭탄 같은 존재들, 전혀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수 없는 가정, 어쩌면 좋을까요?

가정들이 깨어지면서 우리 다음 세대도 참 어렵습니다.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주중에는 교육기관에 아이들의 교육을 맡기고, 주일에는 교회에 신앙교육을 맡깁니다. 그것이 제일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큰 교회들로 젊은 가족들이 몰리고 거기에 가면 만사 오케이가 되는 상황입니다. 마치 그 속에 있으면 복음화가 된 것 같고, 각인이 되는 것 같고, 요셉이 될 것 같고, 바울도 될 것 같기 때문이겠지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말입니다.

그러나 막상 아이들이 커서 대학에 가고 청년이 되고 또 결혼해서 사는 것을 보면 그것과 거리가 한참 멀고 또 그것에 실망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이 땅이기 때문에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라고 하신 것이 아닌가요. 성경을 주시면서 그것에서 생명을 얻고 위로를 얻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많이 생각합니다. 많이 기도합니다. 가스펠 성도님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소식을 듣고 또 살펴보면 오늘 같이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면서 많이 울기도 합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모두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아니 우리 가스펠 가족들이 희년 공동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너무 큽니다. 주님이 우릴 용서해주시고 사랑해주신 것 많이 많이 느끼고 받아들이고 그래서 우리의 속 깊은 상처들이 치유되고 그리고 회복되어 우리 남편, 우리 아내, 우리 부모, 우리 자녀들 사랑해주고 용서해주고 그렇게 살았으면 해요. 물론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아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해요. 교회 공동체는 큰 가족 공동체예요. 거기에서도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또 서로 위로했음 해요. 그것은 누군가 먼저 시작해야 하는 일이겠지요. 사랑하는 행동들, 용서하는 행동들 그리고 위로하는 행동들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 함께 격려하면서 도우면서 하나님 바라보게요. 하나님이 주신 성경 함께 읽어가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을 맛보며 살아가게요. 그런 마음들이 교회에서 마주하게 되면 깨달음을 얻게 되고 그리고 가정에 가서도 그런 삶을 살아가게 도울 것이랍니다.

큰 역사 아니더라도, 대단한 사역 아니더라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처럼 사랑하며 살아보게요. 고비 고비 넘어서서 믿음의 가정이 되는 길은 그 길 밖에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눈물로 새벽마다 기도하는 것이고, 잘 안되지만 애써서 예배드리면서 말씀 들으면서 마음에 담아 힘 얻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고, 나쁜 머리 지혜 구하면서 성경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 아닌가요. 어떻게 하면 사랑할 수 있을까 하고요 말입니다. 또 우리 가정이 예수 믿는 가정되도록 말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예수님 따르도록 말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_요한복음13:34’

_ 주님께 받은 것처럼, 사랑하고 용서하고 위로하며 살고 싶습니다, 오승주목사

#사랑하고용서하며또위로하며삽시다 #희년공동체 #가스펠교회 @ Seoul, Korea

Gospel Letter. ‘신앙생활을 잘 하고 싶으신가요?’

By | 가스펠편지

가스펠 편지 Gospel Letter

– 신앙생활을 잘 하고 싶으신가요?

신앙생활을 잘하고 싶으신가요? 사실, 이 대답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이 무엇인가요? 바로 주님입니다. 목회를 잘하기 위해서보다 주님을 위해서가 되어야 하고, 성공하기보다 주님을 더욱 알고 의지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다른 목적이 있다면 신앙생활은 늘 제자리걸음이 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_마태복음11:28-29’

왜 오직 주님인가요?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 구원이요 또 안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의 기준은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는 것도, 예배드리는 것도, 전도하는 것도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내 의를 위해서 한다면 그것은 온전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실제로 저는 사역을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지금과 비교하면 그때는 집에도 잘 가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 마음이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또 주님과 동행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명예나 자리나 돈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사실 마음은 누구에게 들킬 일도 없고 누구에게도 평가 받을 걱정이 없는 나만의 비밀스러운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마음에 예수님이 말씀으로 거하신다는 사실은 충격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살피시고 계심을 알고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때만큼은 제 마음이 하나님께 공개된다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죄와 마귀에게 무너지는 사람은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할 것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마음은 정직합니다. 가룟 유다는 육신적으로 동행했지만 그 마음은 은 30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역시 마찬가지로 성령의 역사가 충만한 초대교회 안에 있었지만 마음은 명예와 물질로 사로잡혔습니다. 죄와 마귀가 심어준 마음을 품었습니다.

저는 마음을 지키는 요구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나친 요구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죄악 된 생각과 헛된 공상이 마음에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음을 지키는 길이 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성육신 안에서, 교회를 통해, 그리고 주의 말씀 안에서 자신을 주셨다’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라는 책에 말하였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마음에서 죄악 된 것들, 마귀가 집어넣어주는 것들을 막으려고 애를 쓰지만 잘 안됩니다. 반대로 성경은 예배에 목숨을 걸라고 주문합니다. 예배의 형식이 아닌 그 안에 주시는 생명수를 마시라고 그리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라고 그렇게 마음을 지키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어둠과 빛 가운데서 우리는 늘 선택을 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선택을 해야 합니다. 때론 손해를 감수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주님을 선택하면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로마서12:1)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로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하십니다.(로마서12:2) 신앙생활을 잘하고 싶으신가요? 우리가 진정으로 쉴 수 있는 곳은 예수님 안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면 주님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주님과 동행하다가 어느 순간 인생의 은퇴를 하게 되고 때가 되면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주님과 친밀한 삶을 살다가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길 원합니다.

_예수님을 알길, 만나길, 동행하길 바라며, 오승주목사

Gospel Letter. ‘둘째를 낳고 보니’

By | 가스펠편지

가스펠 편지 Gospel Letter

– 둘째를 낳고 보니.

환경이라는 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첫째를 온전히 도맡아서 챙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둘째와 함께 조리원에 가 있는 동안 첫째를 챙겨야 하고 그런 상황 속에서 둘째와 조리원도 신경 써야 합니다. 평소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노력으로도 잘 안 되는 상황이 닥치면 목사인 저도 제법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어제는 밀린 설교 준비와 글 쓰는 것, 사역 등을 첫째 일찍 재워놓고 해야지 했는데… 첫째의 ‘아빠 일어나’ 소리에 잠을 깨고 보니 아침입니다. 맙소사!

인간은 누구나 환경에 영향을 받습니다. 마음속 상처나, 낮은 자존감, 비교의식이나 여러 가지 마음속 환경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경제문제나 가정문제, 실제적인 주변 환경이나 주변 사람 등은 꽤나 우리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그것들 전부 요람이겠지요.

저는 신앙생활의 역사가 짧다 보니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고, 또 교회를 충실하게 섬겼음에도 불구하고 귀가 얇았던 것 같습니다. 누가 이런다더라, 저런다더라 그러면 줏대 없이 이리저리 갈대처럼 흔들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 중에 분명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는데 삶은 그렇지 않다거나, 교회를 잘 섬겨야지 고백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분들을 보면 대부분 환경이 가로막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매번 똑같은 환경입니다. 환경을 한번 극복하고 넘어가면 될 텐데 그걸 피하고 포기하고 낙심하고 숨어버리면, 다시 그 환경은 또 우리를 괴롭히게 되는 거죠.

죄인 된 인간은 하나님을 피해 살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런 습성들이 만든 것이 우리가 겪는 모든 내적, 외적 환경들입니다. 그리고 세상입니다. 그래서 세상과 가까워지면, 돈이나 명예, 쾌락이나 행복과 같은 세상이 주는 것들과 가까워지면 주님과 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_로마서6:6’

자아가 아직 죽지 않았다고 하시는 분들을 보면 자신의 혈기나 정욕, 음란함과 욕심, 시기 질투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에서 주님과 연합하여 죽은 것은 육신이 아니라 죄의 종노릇 하던 옛사람입니다. 그 말은 우리 안에 죄의 욕구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죄의 종노릇 하던 옛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혈기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혈기에 종노릇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정욕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정욕의 노예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으면서 자아를 죽이려는 것은 마음을 비우고, 집착을 버리는 도 닦는 종교생활 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요람을 찢는다는 말은 내 자아를 죽인다는 말입니다. 내 자아를 죽이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온전히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보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과 가정, 그리고 교회에 어떻게 주고 계시는지, 그리고 어떻게 영적인 싸움을 싸워 내 가정과 교회 그리고 후대들을 지켜야 할 것인지 그것들이 보이게 됩니다.

그것이 보이기 때문에 힘겨운 환경 속에서 믿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이유는 단지 내가 행복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실 구원 사역 때문입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길 기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스펠 교회는 지역 교회가 아닌 성도들의 모든 가정과 지역에 세워지는 말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노릇 하지 않기 위해 ‘결단’을 해야 합니다. 레위기 말씀처럼 예배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결단해야 합니다. 결단은 더 이상 죄의 종노릇 하지 않겠다는 고백입니다. 그 결단은 요람을 찢고 나오도록 힘을 줍니다.

_환경에 신앙이 지지 않길, 신앙이 환경에 승리하길, 오승주목사

Gospel Letter. ‘신앙생활의 4가지 기준’

By | 가스펠편지

가스펠 편지 Gospel Letter

– 신앙생활의 4가지 기준

이 시대는 ‘자신 혹은 자아’에 빠져있는 시대입니다. ‘자신’으로 치환된 단어들이 이리도 쏟아진 적이 없고 우리 자신에 함몰되어 버린 채 객관적 진리와 접촉할 시간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엄청난 진리와 접촉할 능력과 기회를 가지고도 말입니다.

우리는 결국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사실입니다. 그 때에는 인생에서 수확한 모든 메달들은 떨어져버리고 모든 업적들도 의미가 없어질 것입니다. 그때 인생에서 남겨지게 될 유일한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어떻게 여기실 것인가’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느냐 입니다.

첫째, 영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때부터 영원에 관심이 생겨났습니다. 내세가 있다는 사실도 설교와 성경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땅은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통해 우리는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달에 처음으로 착륙한 우주비행사들이 지구를 봤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인간의 눈으로 우주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제일 먼저 창세기1:1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인간은 결코 이 우주를 조성할 수 가 없습니다. 이 우주에 적합한 유일한 단어가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머니에서 포도주와 빵 한 조각을 꺼내 성찬식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우리가 영원과 접촉하여 사는 길입니다.

둘째, 도덕입니다. 세상은 도덕성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선하다 악하다, 좋다 나쁘다, 우파 좌파 이런 식으로 서로 구분하여 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도덕성은 위와 아래 뿐입니다. 예수님은 악한 자를 선하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깨달을 때 은혜가 시작됩니다.

셋째, 책임입니다. 세상은 책임을 말합니다. 남편이 잘못했잖아, 아내가 잘못했잖아, 아들이 잘못했잖아, 딸이 잘못했잖아, 부모가 잘못했잖아, 그가 잘못했잖아, 그녀가 잘못했잖아, 그들이 잘못했잖아.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문제의 핵심은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성경은 거울을 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살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내 자신을 보길 원합니다. 성경은 우리보고 하나님 역할을 하지 말라 고 하십니다. 우리가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종종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도 살아야 하고 저들과 악수를 하기도 해야 합니다. 저는 네팔 사람과 살 수 없고 그들과 악수하는 것도 마음에 내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과부와 고아와 병든 자와 버려진 자들에게 가셨습니다. 십자가 사랑은 그런 자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그런 자였습니다. 영적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잊어버리고 교만하게 살고 있을 뿐입니다. 십자가 사랑이 마음에서 멀어져 가면 우리는 하나님에게서도 멀어져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바로 사랑입니다. 가깝게는 믿지 않는 가족을 사랑해야 하며, 멀리는 이름도 모르는 네팔의 한 영혼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마음을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예수님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_요한복음15:10-11’

_사랑하는 가스펠 가족들에게, 오승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