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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18

Gospel Letter. ‘ 예배의 영광과 축복됨을 회복하길 원합니다 ‘

By | 가스펠편지

Gospel Letter. ‘ 예배의 영광과 축복됨을 회복하길 원합니다 ‘

예배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영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사실상 우리는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예배에서 공급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이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릴 때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기뻐하시는 예배 가운데 임재하십니다. 그 임재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임재를 거두시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임재를 거두시면 이스라엘이 다시 죄악과 재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임재에서 멀어진 이스라엘은 영적인 공격으로 혼란과 갈등, 위협을 받아 통제가 불가능해지고 결국 파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에 매우 민감했습니다.

초대교회 역시 성령의 임재로 시작된 교회입니다. 성령의 임재 가운데서 담대함을 얻고 능력을 소유하며, 이기적인 마음을 꺾고 다른 사람들과 진실한 교제와 나눔에 힘쓰게 됩니다. 성령께서 임재하실 때 우리는 죄를 회개하며, 마음에 위로와 기쁨을 얻어 더욱 서로를 사랑하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해 찬양과 감사를 하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상의 변화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심으로 일어나는 복된 현상입니다.

예배 중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 성도는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심을 품게 됩니다. 아무리 복잡한 형편에 있고, 각 사람이 처한 상황이 다양해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예배 속에서 만나고 만지십니다. 세상에서 버려진 작은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그를 소생시키고 회복시킵니다. 그를 일으켜 그리스도께 의지하게 만들고 거룩한 삶에 더욱 힘쓰고자 하는 마음의 감동을 주십니다. 예배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견고해지고 삶이 바뀌는 것은 예배 때 하나님이 임하시어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배에서 은혜를 공급받지 못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배를 무시하면서 영혼의 목마름과 상함이 해결되기 원하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게으른 생각이며 거짓된 망상에 빠진 것과 같습니다. 겉으로는 교회에 속했어도 예배 가운데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는 영혼은 병이 들어 연약해집니다. 그리하여 죄악된 본성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예배를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예배에 방해되는 그 어떤 것이 있다면 당장 멈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배가 교회의 모든 사역과 행정의 이유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가 익숙해졌다고 해서 경솔하게 예배드릴 위험이 항상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나도 모르는 순간 예배의 은혜에서 멀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드리는 예배라고 그 비중이 7분의 1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드리는 예배라도 그것이 일주일의 모든 삶의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는 예배와 예배드리는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예배가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목사입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시지요? 그러나 당연한 그것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어떤 분들은 주일에 교회에 와서도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더 중요한가요?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인가요?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지 못하면 그 모든 이유들의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예배는 그저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타락한 바리새인이나 가룟유다와 같을 것입니다.

예배를 귀하게 여기고 영광스럽게 여기는 자가 예배의 은혜로움과 감격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예배를 생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모함입니다. 마리아가 그랬고, 물 한 동이 들고 가는 사람이 그랬습니다. 이름 없는 집주인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항상 유월절을 생각하고 준비했습니다. 인간관계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아무런 사역을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은 놓치지 마십시오. 그저 예배만 드리고 있다면 하나님의 임재를 간구하시길 바랍니다. 그 예배마저도 놓치고 있다면 삶을 당장 바꾸십시오. 당장 학점이 높아지고, 당장 경제가 좋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계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 전부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_요한복음4:24’

 

_가스펠예배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축복의 예배가 되길, 오승주목사

Gospel Letter. ‘ 예수님을 사랑한 마리아처럼 ‘

By | 가스펠편지

Gospel Letter. ‘ 예수님을 사랑한 마리아처럼 ‘

‘저 사람 예수님께 미친 거 같아’

‘저 사람 교회에 미친 거 같아’

무엇인가를 아낌없이 줄 수 있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 감정은 어떤 옳고 그름과 다른 감정입니다. 옳고 그름과 같은 가치와 다른 가치입니다. 사랑하면 아낌없이 주고 싶고 줄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오해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무라시면 기분이 나빴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으로 데리고 가면 사랑하시지 않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길이라고, 좁은 길이라고 불평했습니다.

목회를 하다 보니 이런 갈등이 자주 찾아옵니다. 분명 이 길이 맞는데 이 길을 설명해주지 못할 때입니다. 말해주지 못할 때입니다. ‘목사님 그렇게 하면 안 되요. 목사님 축복해주셔야죠. 목사님 그것은 합리적이지 않아요. 그것은 옳지 않아요.’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인 나드 한 옥합을 들고 와서 깨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부어버렸습니다. 가룟 유다는 펄쩍 뛰었습니다. 미친 거 아니야? 지금 유월절을 앞두고 가난한 자들을 도울 수 있는데 그것을 깨버리다니 정신이 나간 거 아니야? 가룟 유다의 말은 사실 전부 다 옳은 말입니다. 수천만원이나 되는 값비싼 향유를 팔면 정말 많은 가난한 자들을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고, 또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룟유다가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마리아가 예수님의 사랑을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이해했던 마리아는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그런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자신의 머리를 풀어 발을 닦아 주었습니다. 나는 죄인이다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자기부정을 통해 예수님을 왕으로 주인으로 섬기겠노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누구보다 기뻤습니다. 누구보다 감사했습니다. 누구보다 행복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삶에는 옳고 그름이 필요합니다. 합리적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에서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십자가 사건 곧 십자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계시나요? 그들이 무슨 일을 했으며 그들이 하나님께 어떻게 쓰임 받았는지 아시나요?

저는 지금 제 인생을 되돌아보니 많이 후회되는 것이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능력이 없어서 드릴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하지 못한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돈은 없었을 지라도, 능력은 없었을지라도 시간이 있었고 무엇보다 마음도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향유옥합처럼.

저는 사랑하고 살고 싶습니다. 사랑이 별거냐라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사랑이 전부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십자가 사랑은 하나님의 모든 사랑입니다. 그것을 알았던 마리아처럼 저도 그 십자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감사로 가슴 벅차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사랑은 별거입니다. 그 사랑의 끝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끝이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_마가복음14:6’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_고린도전서15:58’

 

_마리아처럼 내 향유옥합을 깨뜨려 사랑합니다, 오승주목사

Gospel Photo. 2018 가스펠 전교인 야유회

By | 가스펠사진

2018 가스펠교회 전교인 야유회 !

미세먼지가 하나도 없는 맑은 날!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고 성도님들도 함께 교제하는 기쁜 날!

야유회 현장으로 가봅시다!

야유회인데 체육대회 같은 그런 날이에요^^

일단 무엇보다도 안전을 위해(?) 준비운동 실시!

세빛이도 현아샘과 으쌰으쌰!

준비운동은 이만하면 됐고! 이제 팀을 A, B팀으로 나눠 몸풀기 게임을 시작해봅니다.!!

몸풀기 게임은 과연 뭘까요?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게임!

상자안에 든 물체를 맞추는 게임입니다.

” 이 안에 든 걸 맞춰봐! ”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안에 든 물체를 만져만 보고 맞추는 게임인데요…

상당히 두려운 게임이었습니다^^~ 선수들의 표정만 봐도 두려움ㅎ

차마 손이 떨어지지 않는.. 그런 게임이죠 ㅎ

해삼, 조개, 미역, 유부, 설탕.. 등등이 박스안에 들어있었답니다^^ ㅎㅎ

내년에는 더 두려운 물체들로 선수들을 당황하게 하고 싶어요ㅎ

권사님들의 대담함은 역시@@!!

유치부 아이들과 초등부 아이들의 판 뒤집기 게임!

아이 신난다~ 유치부는 하얀색 판, 초등부는 주황색 판으로 만들어서 30초 안에 가장 많은 색이 나오는 팀이

이기는 게임이었는데요~ 유치부는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이 도와줬습니다^^

초등부 아이들이 봐주지 않는 게임!

(참고로 저도 초등부팀이라.. 초등부 응원ㅎ>.<)

두손 간절히~ “저도 할 수 있는 게임인가요?”

“그럼요!!!!”ㅎㅎㅎ

다음은 미션계주 입니다^.^

각  A(빨간끈), B(파란끈)팀에서 굴렁쇠, 2인3각, 제기차기로 빨리 들어오는 팀이 승리합니다!

다음은 단체줄넘기!!! 각 팀별로 단체줄넘기로 가장 많은 수 합산하여 승리하는 게임입니다.

단체줄넘기를 두 팀 다 너무 잘하셔서 깜~짝 놀랬습니다!!

10개도 못할 줄 알았는데… 36,,37개가까지! 두 팀, 모두 잘하셨어요!

이번 야유회의 하.이.라.이.트!!!

줄.다.리.기!

가장 큰 웃음과 감동(?)인 줄다리기는 앞으로 매년 했으면 좋겠어요ㅎㅎ

“어허~ 우리는 A팀, B팀 준비됐나?”

“해볼 만 하겠군” ㅎㅎ

“자~ 우리 줄다리기 즐겁게 합시다^^!!!”

“만만치 않다~~~ ㅎㅎ”

경기 후 악수로 줄다리기 게임은 종료되었습니다~~

승패도 중요하지만 역시 마무리는 서로 수고한 팀의 악수로 마무리^^ㅎ

즐거운 점심시간~~ 모두 수고한 가스펠가족여러분, 맛있는 점심 먹으며 다음 게임을 준비해요?ㅎ

위풍당당, “세빛이 어디가요~~~?”

“밥 먹었으니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아하!?

“아~ 이맛이야! 밥도 먹고 식후 음료수도 마셔야지~”

귀여운 서우의 패션의 완성은 한 쪽 다리만 바지 올리기ㅎ

얘들아 밥 먹고 놀자. 유치부 지킴이 현아샘.

다하와 윤하는 모래놀이 중입니다><

한빈이는 비눗방울 놀이.

“시은아 ~~ 우리 공놀이 할래?”

“언니 나도 밖으로 나가고 싶어.. 신발은 신었지만..아직..”

“선우누나~~~ 시완이랑 공놀이 하자~~!!!”

예성이는 줄다리기?ㅎ

유치부, 초등부 줄다리기 및 줄넘기!!!

예쁜 우리 아이들!!ㅎ

이어지는 축구타임!!!

와~ 멋진 가스펠교회 축구팀ㅎ

이어지는 마지막 게임! 아이들의 계주입니다^.^

세언이와 하늘이 스타트!!!

제일 잘 뛰는 6학년 세언이형과 뛰는 하늘이의 힘찬 스타트!

반면 여유로운 세언이의 표정ㅎ…

먼저 출발한 예성이 힘차게 달립니다!!

누나가 간다!!!

먼저 출발하는 세빈이!!

으쌰으쌰 혜민이 진짜 달리기 빠르더라구요~~ㅎ

혜주 먼저 출발했습니다~~!!

선우 출발!!~ 어랏~ 아빠가 사진 찍어준다~ 여유롭게 카메라도 봐주며~~ ㅎㅎ

계주의 승패보다는 달리기가 좋은 선우!!!

혜주도 신나게 달려봅니다.~ㅎ

세이야 가자!!! ㅎㅎ계주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달린다~~ㅎ

아이들의 계주 영상!!! ㅎㅎ

여러분! 모두 즐거운 시간 보내셨나요?ㅎ

이번에는 야유회가 아니라 체육대회, 운동회 같았어요^^!!

줄다리기, 줄넘기,계주.. 신나게 달렸습니다.

내년에도 함께 해주실거죠?

사정상 참석 못하신 가족여러분~ 사진으로 마음을 달래고 내년을 기약해요!^^

안녕!!!~~~

2018.5.22.가스펠교회 전교인 야유회

감사합니다.

포토 – 장인석 장로님, 정진욱 집사님 감사합니다^>^

Gospel Letter. ‘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

By | 가스펠편지

Gospel Letter. ‘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

교회는 다니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훈련을 받는 분들도 많습니다. 아침마다 설교를 틀어놓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스스로 신앙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헌금도 많이 하고 또 그것을 자랑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딜 가나 자기는 신앙이 매우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대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닮아가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자기를 부정하고 성령을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세상과 싸우고, 영적인 싸움을 싸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고난당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행여 그런 일이 벌어지면 원망하고 불평부터 합니다. 말씀도 내 성공을 위해 듣지 하나님과의 관계로 듣지 않습니다. 그러니 순종이 없습니다. 교회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었나 생각하지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로 살며 활동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의 삶에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즉, 변화가 없는 삶을 삽니다. 자기는 보이는데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청년들과 성경 좀 읽자고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해보니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을 읽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만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 예수님을 믿는 것에 대한 삶을 생각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감사함으로, 정말 행복하게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십자가로 거듭나지 않았는데 어찌 내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겠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_왕상18:21’

꽃만 꺾으려고 합니다. 열매만 따려고 합니다. 꽃만 꺾어다 놓고 열매가 맺혔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뿌리도 없고, 그 과정도 없습니다. 그저 결과에만 목을 맵니다. 과정이 고달프다고 생략해야겠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걸 모르면 자꾸 어떤 현상이나 상황, 환경에 목을 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여전히 어디로 갈까? 고민하고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바알이든지 하나님이든지 결정을 해야 합니다. 물론 그 결정이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사이에서 머뭇머뭇거리는 것이 신앙생활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경에 참 많습니다. 그들이 십자가를 경험했다는 증거는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영혼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의 모습이 감사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이 잘 풀려서 감사하다가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져서 감사하다가 아닙니다. 그런 감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기에 모든 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내 환경도, 내 상황도, 내 모습도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십자가에서 오는 감사는 우리 삶에 엄청난 변화를 줍니다. 오랫동안 살아왔던 죄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싸우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영적인 싸움입니다. 내 힘으로 싸울 수 없기 때문에 성령께 의지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잘 알게 되고 믿음도 성숙해집니다. 그런 과정이 없이 주일에 교회 한번 갔다고 성경 좀 읽었다고 헌금 좀 했다고 믿음이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 생각해보십시오. 정말 예수님을 믿고 계십니까?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생명의 기운입니다. 생명으로 가기 위해서 입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저에게 가까이 오매 저가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되_열왕기상18:30’

 

_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길 간절히 원하며, 오승주목사

Gospel Letter. ‘ 코람데오(Coram Deo) ‘

By | 가스펠편지

Gospel Letter. ‘ 코람데오(Coram Deo) ‘

‘코람데오’는 ‘하나님 앞에서’란 뜻의 라틴어입니다. 제 모교의 표어이기도 했습니다. 몇몇 신실하신 교수님들께서 코람데오의 신앙을 가지지 않으면 결코 훌륭한 목회자가 될 수 없다고 수없이 강조하셨습니다. 아무리 큰 교회를 하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든 하나님 앞에서 인정 받지 못하면 그것은 진짜 성공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코람데오가 얼마나 어려운 신앙인지 말입니다. 말로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하지만 실제로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산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신학교 시절에는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진짜 많이 몸부림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 생각하니 아침에 일어나면 엎드려 기도부터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니 성경을 펼치고 읽습니다. 공부를 할 때도 정직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노력한 만큼 결과를 받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래서 교수님들도 전통적으로 시험 감독에 들어오지 않으셨습니다.(칠판에 코람데오를 적으시고 말이죠.)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분 나쁜 일이 생겨도 하나님께 왜 기분이 나쁜지 여쭈어야 했습니다. 무엇을 판단하고 선택할 때도 항상 기도를 하게 됩니다. 남 이야기를 함부로 할 수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도 하나님이 주신 말씀 앞에 다시 확인해야 했습니다. 이런 삶은 사람들과 함께 있든, 혼자 있든 언제나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전도사가 되고 목사가 되고 보니 하나님 앞에서가 너무나 어렵게 느껴집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기 시작하고, 어떤 결과를 내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괜찮아 라고 타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뜨겁게 예배드리던 마음가짐도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교역자는 대충 예배드려도 된다는 식입니다. 사역만 잘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감사한 마음, 기쁨이 넘치는 마음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저 멀리 가버리고 서로 자존심을 세우고, 서로 분탕질을 하기 바쁩니다. 영혼을 살려야겠다는 뜨거웠던 열심이 이제는 ‘왜 나만 열심히 해야 해?’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제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너는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구나, 너는 왜 변질되었니?, 내가 너를 알지 못한다’라고 하실 것 같았습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_야고보서3:13’

사탄은 우리에게 스스로 지혜가 있다 생각하게 만들고 총명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불신앙을 집어넣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불신앙입니다. 구원받을 때는 그렇게 고마워하고 감사하면서 무엇이든지 다 할 것처럼 기도했으면서 언제부터인가 하나님을 찾지도 않을 만큼 이상해졌습니다. 마치, 가난할 때 그렇게 도와줬더니 먹고살만하니 이제 당신 도움 필요 없다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타락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혹은 우리가 타락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교제 속에 있다면 우리는 늘 감사가 넘칠 것이고, 우리는 늘 하나님의 선한 뜻을 위해 노력하며 살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뜨겁고 열정적일 것이며, 우리의 인생은 밝은 빛으로 밝아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나라에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될 것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것이 꿈이자 비전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볼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구나 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_시편131:1-3’

 

_하나님께 인정받고 싶습니다, 오승주목사